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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가난한 사람들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죄와 벌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뭘까..
가난한 자의 소심함과 자격지심을 리얼하게 드러내는데, 구태의연하거나 그냥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혼과 사상을 불어넣었기 때문인가? 사상이라기보다는 정신? 정말 사사로운 일상의 나열인 듯 싶지만, 그들의 사색은 현실에 확실하게 뿌리박고 있다. 그 현실의 가난, 그 가난 속에서의 인간의 자존심. 그 자존심이 뭉개지는 현실 괴리에 대한 고민과 또 행동들...
그래서 서간체 소설임에도 지루하지 앟고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내면과 현실의 접전지점을 잘 드러내므로 주인공들은 살아있다.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은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고뇌와 인간적 갈등, 치열함이 낯설지 않고 포근하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있다.
'분신'은 순간의 선택이란 것, 우연이란 것이... 그것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 우연은 한번 발생하고 잊으면 그뿐이거나, 그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연 자체가, 작은 선택 하나 자체가 삶이라는 것인데, 다시말해서, 난 내 삶과 내 지향을 분리시키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면 내가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대강 산다. 그렇다고 그 이후 나의 이상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쩜 그냥 소풍이나 왔던 것 정도로 현실의 삶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뭔가 내가 내 삶이라고 명명할 그 무엇인가가 이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할 거라는 기대, 지금 이 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지금의 삶은 뭔가 충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골냐드킨는 자신의 한번의 실수,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집에 초대받지 않았는데도, 바보같은 몰골을 하고 남들(상류계층 사람들)의 놀림감이 될수 밖에 없는 조건에서도,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충실하게 그 집에 쳐들어갔었던 사건에서부터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분신을 만나고 그가 정신병원으로 우송될 수 밖에 없는 과정 까지 가는데.... 골랴트킨에게는 그 행위가 결코 우연이거나 순간의 실수 일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골랴트킨의 삶을 삶으로 본다면, 코메디 같지만, 그 순간의 진정성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분신'은 엑서사이즈 문제를 풀듯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강 결정해내는 내 삶의 태도에 반성의 꺼리를 주었다. 삶은 순간 순간일뿐이다. 그 미래란 또는 희망이란 그야말로 '관념' 일뿐이다.
진정한 골랴트킨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의 정신병원행은 단절의 극대화를 드러낸다. 그러나 나도 어느새, 골랴트킨을 병원에 쳐넣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