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흑에서 마틸다의 등장은 ...

적과 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며칠동안이나 붙들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는 소설. 그 장편을 어떻게 짧게 표현할수 있을까. 이 소설은 미천한 신분을 가진 한 인간의 처절한 사회와 자기인식과의 투쟁을 그려낸 사회소설이고 성장소설이다. 그 한 장면마다 스탕달이 이뤄낸 리얼리티가 묵직하기만 하다.

마틸다가 쥘리엥소렐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드러낸 그녀의 쥘리엥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그로 드러난 쥘리엥에 대한 감상만을 적어본다.

'적과 흑'에서 마틸다의 등장은, 이 소설이 나중에 폄하되었던 영웅주의에 의거하여 도식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소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란 단서를 제공할 만큼, 그녀의 성격이나 지향은 허무맹랑하다. 그녀는 최고의 부와 신분과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로, 그녀의 영웅에 대한 막연한 사랑, 영웅의 용기와 좌절과 입신양명의 드라마틱한 삶에 대한 호감, 그로인해 쥘리엥의 비범함을 바라보고 그를 사랑한다는 줄거리에서는, 아무리 그녀가 최고 귀족계급의 권태로움을 탈출하기 위한 상상과 모험이라지만... 쥘리엥과 비교되는 상류사회의 젊은이들의 경쟁할 가치가 없음으로 인한 나약함과 무미건조함을 리얼리티로 보여주고자 한다지만, 마틸다의 설정과 그녀의 지향성-그녀는 글로 접한 혁명가에 대하여 사랑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자격으로 바라보며 위협과 모험을 내포한 사랑을 꿈꾸는데-자체가 소아적인 관념에 불과해져버리는 것이다. 스탕달이 리얼리티에 충실했다면, 정말 마틸다 같은 여인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정말 그랬을까? 싶은 정도이고, 어쩌면 스탕달이 남자이므로, 여자의 심리를 잘못 집거나, 그의 상상 속에 그려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 스탕달이 적고 있는 것처럼, 정말 너무나 권태로운 계급의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평생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 최고의 찬사와 지위를 누려왔던 한 여인이 가져볼 만한 모험적 사랑의 가능성이 당연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쥘리엥이 가지고 있는 품격은, 본능에 성실한 것이었다. 마틸다가 보기에는... 그것과 비교하면 젊은 귀족들의 행태란 거들먹거리거나 위선적인 것에 불과하다.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나약한 기득권의 수혜자들에 불과하여 예속적이고 진취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다 큰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에 비해 쥘리엥은 자신의 목을 겨누는 자와 싸우고, 항상 현실을 모두 자기 손에 쥐기 위해서 눈을 부라리고 사고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또 그만큼 상처받는 생동감 넘치는 생명체인것이다.

마틸다가 쥘리엥을 판단하는 지점을 읽으면서... 아... 그래. 쥘리엥이 소설 전반적으로 일맥상통하게 싸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종교와 신분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관습적으로 한꺼풀 뒤집어 씌여놓은 그 사회의 위선, 종교권력 신분권력 그것들을 화려하게 포장해놓은 종교적 사상과, 신분적 현실.... 그것에 맞서 쥘리엥은 심플하게 그리고 자기 본능에 충실하게, 스스로는 '위선'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포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전체가 가지고 있는 '위선'에 비하면, 그의 위선이란 발가벗겨진 어린애 같이 가련하기만한, 그 자의식의 본능적인 권력지향의 원형인 것이다. 집단화되고 구조화되고 사회화되고 기존 세력화되어 있는 사회의 위선, 권력을 포장해놓은, 그 위선에 맞서 새로운 위선, 그것은 현 질서에 대한 반발이고, 또 다른 본능적 권력욕의 도전장이며, 기존의 것을 부수는 것에 적합할 정도만 신선한 사상이며, 결국은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사회변혁의 이념이 우선하지 않는) 시도이고 행동인 것이다.

난 이 소설이 의식적 변화나 성장의 과정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리얼리티에 바탕을 두어서 더욱 선명하고 구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이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라스꼴리니코프와 견줄 수 있는데, 그들은 현실 권력의 추종자와는 다른, 그것은 또 하나의 권력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하는 사상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묻어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쥘리엥이여. 그대들은 어디 있는가. 너무나 마력적인 쥘리엥 소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