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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ㅣ 웅진 세계그림책 213
앤서니 브라운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2월
평점 :
공원에서
앤서니 브라운
웅진주니어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공원에서>는 참 신비로운 그림책이었다.
어느 날 같은 시간, 같은 공원에서 잠시 머물렀던 4명의 시선과 이야기를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방식으로, 보통 그림책이 전하는 구성과 달랐다. 아들도 마지막에 가서야 이야기 전체 조각들을 맞춘 듯이 다시 한번 그림책을 펼쳐들었다.
1. <공원에서> 네 명의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

그림책 <공원에서>에는 찰스와 찰스 엄마, 스머지와 스머지 아빠의 공원 산책길을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첫 번째 목소리>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없는 찰스엄마의 이야기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심지어 아들이 반려견보다도 못한 위치에 있고, 세상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는 경계의 대상이다.
<두 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일자리를 잃고 깊은 좌절에 빠진 스머지 아빠였다. 실직에 따른 삶의 고민이 깊지만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려는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세 번째 목소리>에는 찰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의 억압에 눌려서인지 그림자마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세상을 멀찍이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한다. 마지막 <네 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밝고 긍정적인 소녀 스머지의 이야기였다.
그림책을 다 읽고서야 네 명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는 평범한 공원 산책의 풍경이 전체가 눈에 그려졌고 그 의미를 깨달았다. 다양한 이야기와 다각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귀기울이게 되었다.
2. 발견의 재미,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림책 <공원에서>
그림책 <공원에서>는 네 명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같은 장소와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표현되었는데 참 놀라웠다. 또 인물들의 감정과 시선이 그림에 녹아있어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미, 생각하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네 명의 목소리만큼이나 글자체에서도 인물의 성격과 상황, 심리가 느껴졌다. 찰스 엄마의 이야기에서는 권위적인 글자체, 스머지 아빠 편에는 굵지만 일반적인 글자체, 찰스 편에는 가늘고 힘 없는 글자체, 스머지에서는 자유롭고 귀여운 글자체가 쓰였다. 다른 글자체로 전개되다 보니, 정말 목소리만큼 각자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아들 : 엄마! 나는 스머지와 아빠가 집으로 돌아갈 때 그 그림이 인상적이었어. 공원으로 나갈 때는 어둡고 좀 으스스했는데, 스머지랑 즐겁게 오는 길이 환하고 예뻤어. 아빠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 같아. 그리고 산타할아버지의 등장도 재밌었어.
아들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다.
확연하게 달리 표현한 그림에서 아빠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했던 모양이다. 이외에도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찰스와 스머지가 처음 바라보는 장면도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목소리 편에서도 마치 흑백과 컬러 텔레비전의 대비처럼 찰스가 바라보는 풍경이 쓸쓸한 색감이라면 스머지가 바라보는 세상은 알록달록 자유분방하고 기분 좋게 그려져 더욱 감정의 대비를 풍부하게 느꼈다.
덕분에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목소리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사람 자체이다. 생각과 마음 한켠을 들려주는 진심이면서, 시선이 가닿은 자리의 풍경이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님이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사와 감정을 구성하는 방식에 정말 몇 번을 놀라고 감동했던 시간이다.

아들 : 엄마! 이 그림책에선 자꾸 모자가 나오는데 궁금해. 나무도 구름도 모자 모양이야.
이밖에도 앤서니 브라운 작가님의 그림책에서 듬뿍 느낄 수 있는 상징들이 정말 흥미로웠다.
아들은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하나하나 뜻밖의 숨겨진 그림들을 찾으며 재밌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모자’였다.
가만히 보니 찰스 엄마의 옷차림이 산책과는 맞지 않게 과했다.
유난히 커다란 모자부터 가죽 부츠까지 편안하지 않은 차림으로 공원을 산책한다. 찰스의 스산한 마음 풍경 언저리에 구름도, 나무도, 가로등도 모자 모양이었다. 모자가 '관'(권력)을 상징하듯, 엄마의 권력은 물론 억압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뒷표지에서 공원에 떨어진 엄마의 모자를 보며 마음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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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다 읽고 나서 공원에 다녀온 네 사람의 다른 마음과 느낌, 상황을 알게 되었다. 신기했다.
<공원에서>를 읽은 아들의 한줄평이었다.
나에게도 자꾸 생각나는 그림책이면서 읽을 때마다 책장을 앞뒤로 펼치며 들여다보기 바쁜 그림책이었다. 각자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방식 덕분에 인물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공감하고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새롭고 특별한 그림책의 문법을 선사한 작가님의 역량 덕분에 큰 감동을 받았고 아직까지 여운이 마음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