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나의 여친
블레이크 넬슨 지음, 홍한별 옮김 / 서해문집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

블레이크 넬슨 지음/홍한별 옮김/서해문집

 

 

2층에서 수학숙제를 노려보고 있는데 아빠가 들어온다.

 

아빠 : 엄마랑 대학이야기했다며?

: ……

아빠 : 네 계획은 뭐니?

: ……..

아빠 : 좋아하는 분야가 있니? 특별히 관심있는 분야가 있어?

: ……

아빠 : 나는 늘 너한테는 법대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래를 생각하면 말이야.

: ???

아빠 : 네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잖니. 엄마 아빠한테 어떤 원망이 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걸 내세울 때가 아니다.

: !!!

아빠 :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린 이 문제를 아주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고, 네가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가길 바란다.

: ……

아빠 : 생각해볼거니?

: ……

아빠 : 그래, 알았다……

 

본문 중 p.170

 

사춘기 남자아이를 자녀로 둔 아버지의 흔한 대화장면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대화라는 명분으로 아들의 방문을 연다. 마침 수학숙제를 하려는 아들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다짜고짜 대학이야기를 꺼낸다. 참고로 아들은 대학에 갈 의지나 마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마음이 강하다. 이미 아들에게 대학에 가면 최신 자동차를 뽑아주고 대학등록금도 걱정않게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아들의 관심사는 전 여자친구를 잊지못해 여자친구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에 집중이 되어있다. 결국 이 대화의 끝은 아들이 대학을 갈것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중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평균 30분 미만인 자녀가 42.1%였다.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답한 자녀도 6.8%에 달했다.

 

산업화를 거치며 물질만능주의 사회구조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가장 힘쓴 사람들은 우리네 아버지의 공이 컸다. 밤늦은 시간까지 가정보다는 회사일에 더 열심을 내었고, 그 결과 사회적 생산성이 향상되고, 국고가 늘었다. 아버지의 수고와 헌신은 사회를 키워냈지만, 정작 자녀와 소통하는 법은 몰랐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었다. 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퍼맨이 돌아왔다’, ‘오마이 베이비’, ‘아빠를 부탁해등의 공중파 방송은 엉성하고 서툴러도 자녀와 함께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들과 함께 방송을 하며 오히려 대화가 늘었다고 말하는 방송인 김구라의 부성도 사뭇 진지하다. 방송인이기 이전에 자녀와 함께 하고, 가족을 챙기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시청자도 인정하고 좋게 바라보고 있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은 만 17세를 지나고 있는 고등학교 남학생, 제임스의 성장기이다. 이 나이의 가장 핫한 이슈를 일기에 자연스레 적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독자로 하여금 남의 일기를 몰래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작문 숙제 전문이 그대로 실려있어 그 나이 또래 아이의 평범한 작문 실력이 한 해동안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각 주제에 대한 관점이 어떠한지 마치 작문 선생님이 되어 읽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는 사춘기 남학생의 성장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르크스라는 정치적 인물에 대해 나는 너무 진지했던 탓이다. 주인공에게 마르크스에 대한 견해는 작문숙제를 연속 퇴짜 맞은 후 작문선생님에게 처음으로 B+를 받은 소중한 경험이다. 이 글을 통해 작문에 대한 감을 잡았고, 그의 작문 실력은 나날이 발전한다.

 

그리고 그의 전 여친, 세이디는 내성적이고 평범한 그에게 좋은 면만 끌어내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2학년 때 만나 3학년이 되어 흐지부지 헤어졌지만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던 제임스는 다시 그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환경운동에 동참하는 등 노력한다. 그의 고등학교 3학년은 작문과 여자친구에 대한 열정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일기와 작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였다. 우정, 사랑,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이름의 만남 속에서 주인공은 때로는 어리숙하게 대처하고, 때로는 갈등하고, 의연해지다가, 결국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십대는 삶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미숙함이다. 십대는 대부분 시간을 무언가를 하는 법을 배우는 데 보낸다. 공부하는 법, 일자리를 얻는 법, 자위하다가 들키지 않는 법, 또 십 대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고 거기에 잘 대처하지도 못한다.

(중략)

사랑도 그렇다. 십대들은 사랑에 빠져 황홀경 속에서 거리를 헤매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이 깨지면 충격을 받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십 대는 어떤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모른다. 그래서 십대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본문중 185 

사춘기 남학생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 책을 보는 내내 아들의 근황이 내심 궁금했다. 무엇보다 나름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만 지금처럼 아이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고, 간혹 아빠에겐 비밀로 해달라며 조용히 하는 부탁 정도를 들어주다보면 친구보다 약간 모자란 사이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기말고사를 치르는 아이에게 여전히 잔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르다가 삐죽삐죽 새어나오는 엄마의 목소리를 웃으며 맞받아치는 여유있는 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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