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티 이야기 카르페디엠 9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피티의 일생을 엿보았다. 온통 뒤틀린 팔, 다리와 무표정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태어나 받게 된 백치라는 판정은 가족들에게나, 피티에게나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혀버린 것일까? 

읽으며 참으로 혼란스럽다. 나는 이렇게 중증의 장애인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과 말을 섞어본 적은 없다. 전에 아이가 어려서 수영을 한 적이 있다. 함께 수영을 하는 아이중에 엄마가 뇌성마비인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엄마는 너무나 양호했다. 손이 약간 불편하고(아주 약간), 입이 약간 틀어져 말이 약간 어눌했지만 대화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였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골목에 지체 장애아가 있었다. 커다란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다녔다. 초점없는 눈, 입에서는 연신 침이 흘러 손수건을 대 놓은 모습이 생각난다. 여자 아이였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엄마에게 어렵게 물어보았더니 시설에 보냈다고 하였다. 점점 커져가고... 말이 안 통하는 아이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그 엄마는 셋째를 임신한 듯 배가 불러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보냈을까? 싶기도 하였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더불어  그들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게 사실이다. 나와 다른 모습, 사실 내가 피티를 봤더라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데서 오는 두려움말이다.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듯이 어색할 것 같다.

책의 내용중 트레버가 피티할아버지와 마트에 갔을 때 하는 얘기가 내 가슴에도 비수처럼 파고 들었다.

"저희 아빠가요, 아름다운 겉모습은 가죽 한 꺼풀이지만 더러운은 뼛속까지 속속들이 스며 있다고 그랬어요."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며 읽어나간다. 읽으며 피티할아버지는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피티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가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지만...  무엇을 그다지 한 일도 없지만 그는 늘 감격해 하고 고마워 한다. 캐시와 함께 몬태나 주립대 악단의 공연을 보았을 때도,  오언이 훨체어를 고쳐 주었을 때도, 트레버와 낚시를 갔을 때, 마트에 갔을 때, 영화관을 갔을 때도 그는 감사했다. 그의 그런 마음이 다른 사람들도 감흥시킨 것일까?

피티에게 초코렛을 처음주었던 에스테반이 그만두었을 때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비둘기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글을 선물해 준 조, 피티에게 처음 부끄러운 감정을 알게 하고, 금으로 만든, 반으로 나눈 하트 반쪽이 달려 있는 목걸이를 선물한 캐시, 피티에게 휠체어를 고쳐준 오언, 그들이 피티의 곁을 떠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다시 좋은 사람들이 와서 다시 피티의 곁을 지켜주었을 때는 감사하고 고마웠다.

보즈먼 요양소로 오면서 피티는 오랜 친구였던, 캘빈과 헤어지게 된다.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아픔, 친구를 보지 못하는 상실감으로 마음을 닫은 피티. 그에게 새로운 친구가 다가온다. 트레버는 정말 대단한 아이다. 정말 이런 친구가 있을까? 피티를 위해 휠체어를 바꾸기 위한 모금활동을 펼치고.. 피티의 기사를 신문에 내고, 우연히 오언을 다시 만나고... 그토록 그리워한 친구 캘빈을 수소문해 피티와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죽음의 문앞, 트레버는 피티를 자신의 할아버지로 인정한다.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된다.

머리속은 복잡하고... 마음속은 미묘하다. 어떤 필설로도 이 감동을 전할 수 없을 것 같다. 중증 장애인, 피티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가슴 뭉클한 무엇, 그것이 무엇일까?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하지만 피티 이야기를 통해 내게 다른 삶으로, 감정적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으로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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