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 1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은 아직 미하일 불가코프라는 이름에 낯설다. 가장 뛰어난 20세기 러시아 작가로 평가받는 불가코프를 알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봄(그러니까 군대 오기 직전의 학기) 노어노문학과 전공탐색 과목을 들으면서였다(안타깝게도 국어국문과 진입에 학점제한이 없었기에 이미 국문과 학생이 된 후였지만). 러시아 문학에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서, 1학년 때도 러시아 문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2학년 때 다시 비슷한 교과과정을 가진 수업을 신청한 건, 러시아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에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고, 조금이라도 밑천이 있는 수업을 들어서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나의 학점을 미미하게나마 끌어올려보려는 심산이 가득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2학년 때 듣게 된 수업은 생각보다 새로운 걸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학년 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는 푸슈킨부터 시작해 솔제니친에서 끝이 났지만, 전공탐색 수업에서는 키예프 러시아 문학(이고르 원정기 등의 서사시)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리얼리즘 작가들을 지나 예브게니 자먀찐에 이르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배웠다. 그렇게 솔제니친을 넘어선 소비에트 문학에 입장할 수 있었던 나는 드디어, 미하일 불가꼬프라는 생소한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스탈린 시절에 문단을 지배했던 소비에트 문학은 스탈린과 국가를 위한 찬양가였다. 마치 플라톤이 영웅을 위한 서사시만이 존재의 이유가 있는 문학이라고 말한 걸 신앙이라도 하듯, 스탈린의 통치와 국가의 체계를 긍정하고 이데올로기 강화의 기능만을 하는 시와 소설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었다. 이런 문학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역시 국가가 배후에 있었던 비편단으로부터 거침없는 찬사를 받았다. 미하일 불가코프는 이러한 시대에 태어나 국가의 압력에 저항하던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으로서, 1940년 죽는 순간까지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서도 수술로 인간이 된 개에 스탈린을 비유하는 등(의사였던 그의 의학적 지식이 다분히 영향을 끼쳤던 작품인 "개의 심장")의 적나라하면서도 기발한 풍자를 한껏 선보였지만, 누가 뭐래도 미하일 불가코프 최고의 걸작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이다. 이건 비단 나의 생각일 뿐만 아닌데, 권위에 잠깐 호소하자면, 세계의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불가코프를 찬사하게 된 게 그가 죽은 지 20여년이 지나 잡지에 이 소설이 발표되면서 부터라는 데서도 이견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소설이 20여년이 지나서라도 러시아 문학지에 발표될 수 있었던 건 스탈린의 죽음, 흐루시초프와 페레스트로이카, 그리고 원고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의 아내 등의 덕분이다.

  1930년대 모스크바가 소설의 배경이 된다.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축을 가지고 진행되는데, 볼란드라는 악마가 도시를 발칵 뒤집으며 일으키는 소동 이야기, 예수를 선의 화신으로 그린 소설을 써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독설을 듣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거장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와 빌라도가 등장하는 거장의 소설 속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축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플롯을 형성하며 진행된다.

  볼란드의 광기어린 모스크바 침략은 정말 환상적이다. 극장에서 수천 명의 관중을 상대로 한 그의 검은 마술 공연은 소설 속 관중들의,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넋을 잃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사라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잘린 머리를 다시 붙이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위조지폐가 극장을 가득 메우고, 볼란드가 나누어주는 화려한 옷가지로 옷을 갈아입었던 여자들은 극장에서 나가자마자 벌거숭이가 된다(이 볼란드의 검은 마술 공연은 아주 희극적인데, 미하일 불가코프가 연극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으며 그만큼 많은 희곡을 썼다는 것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볼란드와 그의 일당은 인물의 죽음을 예언하고, 도시의 곳곳에 불을 내며 모스크바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로 인해 도시는 흉흉해지고 모두 서로를 의심하며, 볼란드의 부하 중 하나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음으로 인해 고양이들 수백 마리가 경찰서로 끌려가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모스크바의 모습은 당시의 사회를 지극히 반영한다고 봐야 옳다. 공포 정치에 휘둘려 사람으로서의 본성을 하나씩 잃어가던 러시아 국민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서 악마의 패거리에 의해 조롱당하는 인물들에 투영된다.

  이러한 사회 풍자는 거장의 이야기에서도 계속 된다. 거장이 자신의 온 영혼을 다해 완성한 작품 속에서 예수는 진리로, 세상을 구워하는 자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당시의 국가와는 극도의 괴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찬 비평가들은 이런 소설을 쓴 거장을 비난한다. 수많은 비평가들의 독설을 온 몸으로 받아내다가 거장은 결국 자신의 소설을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는 불멸의 연인 마르가리타를 떠나 도시를 미치광이처럼 떠돌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만다.

  이 거장의 이야기가 드러내느 메시지는 아주 노골적이다. 스탈린의 엉덩이에 키스를 하는 비평가들에게 매서운 비판을 던지는 불가?는 심판의 역할을 마르가리타에게 넘겨준다. 거장과 헤어진 마르가리타는 자신의 연인을 찾기 위해서 악마들과 협상을 하고, 결국 마녀가 된다. 그녀는 악마가 넘겨준 진주 크림을 온 몸에 바르고 발가벗은 채로 빗자루를 탄다. 이제 그녀의 비행이 시작된다. 모스크바의 밤하늘을 날아간다. 소설의 백미다. 하늘을 가르는 알몸의 마르가리타를 보는 독자들은 그 어떤 영화를 볼 때보다도 환상적인 야경을 경험할 것이다. 함께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장면이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환상적이고 시니컬한 장면이라는 평이 있다. 마르가리타는 이제 거장의 소설을 비난한 비평가를 찾아간다. 그의 빈 집으로 들어가 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그녀의 분노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분노이며, 동시에 진실을 추구하는 자들의 분노가 된다.

  작가는 비평가들을 향해있던 비판의 뱃머리를 이제 입을 다문 작가들에게 돌리는데, 소설의 세 번째 축이 되는 거장의 소설 속 이야기가 그 역할을 한다. 빌라도는 예수의 결백을 알고 있다. 예수는 폭동을 주도한 바라바나, 다른 살인범, 강도와는 결코 다르다는 것을 빌라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석방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결국 주위의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사형시킨다. 그는 예수와 친구가 되기를 원했고 그와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다.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형 집행 후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언제나 자신을 책망하며 자신의 비겁함을 부끄러워한다. 불가코프는 빌라도의 이런 자책과 후회를 아주 인간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용서받지 못할 비겁함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자는 비겁하다. 불가코프는 자신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작가들에게 입을 열라고 이야기한다. 진실을 말하라고.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재능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그 어떤 다른 소설보다 재치 있으면서도 환상적이고, 그러면서도 강력하다. 하지만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탁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를 반영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소설이 아니다. 그렇기에 감히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볼란드가 소설을 불태웠다는 거장에게 말한다. "원고는 불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원고는 불타지 않았다. 거장이 불태웠다던 원고는 결코 불타 사라지지 않았다.

  미하일 불가꼬프는 원래 "악마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의 초고를 썼다. 그 초고를 몇 번이나 계속해서 수정했는데, 이미 다른 희곡과 소설들로 국가의 압력을 받던 그는 원고 수정 도중에 실제로 원고를 태워버린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 걸작을 완성시켰다. 초월적인 극기의 결과로 원고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그의 생전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소설 완성 직후 죽었다. 하지만,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가 죽은 후 20여년이 지나 세상에 발표되었으며, 글국 지금 나의 손에까지 와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영원성과 불멸성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사랑에서도 드러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악마의 힘을 빌어 현실 세계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다시 깨어나 영원 불멸의, 시공간을 초월한 곳으로 떠난다.

  육체의 죽음이 영혼의 죽음이 아니듯, 예수의 죽음이 진리의 죽음이 아니듯, 작가의 죽음이 작품의 죽음은 아니다. 사랑과 진리와 예술은 영원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오로지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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