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
김민제 지음 / 역민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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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나에게 ‘도끼‘같은 책이다. 이전까지 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신념과 인간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지만 인간의 ‘전적 타락‘과 ‘연약함‘을 말하고 ‘인본주의‘를 비판하는 기독교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역사의 진보라든지 인간이라든지 이념 같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1998년도에 출간된 《서양 근대 혁명사 삼부작》 시리즈 중 제 2부로서, “서양의 3대 혁명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혁명에 관하여 요즈음 서양에서 논의되고 있는 역사적인 해석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저자는 세 혁명에 관한 해석을 혁명의 ‘꿈’과 ‘현실’로 대비시켜서 ‘혁명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혁명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각각 소개한다. 프랑스혁명의 경우에는 ‘정통주의적 해석’과 ‘수정주의적’ 해석을 소개하였다. 

  정통주의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프랑스혁명을 설명한다. 계몽 사상에 입각하여 부르주아와 민중이 함께 귀족을 타도한 아래로부터의 계급혁명이라는것이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낳았고, 그 이념은 전 유럽에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혁명의 모델이 된다. 수정주의 해석은 마르크시즘의 퇴조와 함께 제기되었다. 수정주의 해석은 정통주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부르주아와 귀족은 이해관계가 일치된 하나의 엘리트계급이었고, 부르주아는 구체제의 특권장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서 민중을 동원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동안에 이뤄진 학살과 공포정치는 혁명이 스스로의 이념을 짓밟는 것이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이후 나폴레옹의 독재로 이어졌고, 오히려 근대화에 역행한 ˝일으킬 만한 가치가 없었던 혁명˝이었다.

  저자는 “균형적이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며 독자로 하여금 정통주의와 수정주의의 논리를 비교해보는 ‘지적인 연습’을 돕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저자는 정통주의와 수정주의가 각자의 논리로 대립하는 격전지에서 객관적인 해설을 해냈을까?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 저자도 사료 선택의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해석의 인용이 대부분 영미 사가들인데, 이들은 정통주의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랑케는 “사실 그 자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는 말로써 역사 해석의 객관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는 더 이상 객관적인 학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포스트모던론자들은 역사를 ‘문학’이라고 간주하며, 역사 의 ‘무제한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비록 저자가 “객관적이고 초연한 자세”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가변적이며 잠정적인 역사학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역사적 배경과 역사학 방법의 변천을 함께 소개하여 역사학 전반의 이해를 돕는다.

  한편 저자는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었다. 정통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을 통하여서 변화된 사회의 모습을 드높인다. ‘인권선언’은 보편적 인간을 위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천명하였다. 혁명 이래로 부르주아가 제시한 국민주권의 원리는 민중 동원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지만, 19세기 내내 계속 표방되는 중에 민주적인 원리가 축적되었다. 반면에 수정주의자들은 정통주의자들의 이상과 달리 프랑스혁명은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혁명의 의미를 축소시킨다. 또한 프랑스혁명 중에 일어난 인권유린과 끔찍한 학살을 고발하며 오히려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를 비교하며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꾸는 일일 것이다. 오늘날 혁명을 희망하는 이들은 프랑스혁명의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으로 저질러진 비극을 보아야 할 것이며, 혁명을 외면하는 이들은 혁명으로 일궈낸 성과를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은 숭고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프랑스 혁명의 높은 이상은 상당 부분이 현실 세계를 초월한 고차원적인 이념의 세계에서만 존재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이념의 세계조차도 넘어서는 신화의 경지에 있기도 하였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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