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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개정판)
빅터 프랭클 저/이시형 역 | 청아출판사 | 2005년 08월
[ 책을 쓰게 된 이유 ]
우선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향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있으므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일상이 평범한 수감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것이다.

삶
니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수 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적이 얼마나 있을까?!
그랬다면,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좌절을 맛보진 않았을테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면, 그 좌절에서 분명 살아 남을수 있을 것이다.
더욱 강한 내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나름의 좌절에서 이겨내고 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목표를 이야기 해 줌으로써,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유지가 될 수 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라는 말에는,
가장 필효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빅터 플랭클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원수도 사랑으로 감싸라고 했다.
사랑만큼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을 지닌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자신도 아직은 그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에게 그와 함께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나라면 어떠한 행동을 했을까?!
쉽사리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눈앞에는 자유가 있지만, 내 바로 곁에는 동료가 아파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여기에는 과연, 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아우슈 비츠에 있는 사람들
시련의 의미
내가 시련을 겪고 있는 이유. 시련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감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아우슈 비츠에서의 죽음
죽음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을 안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때로는 그 희망이 깨졌을 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갖을 때는, 더 멀리 보고 희망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단기간의 희망은 큰 좌절만 가져 오는 것이 아닐까.

빅터 플랭클
심리
반응들은 며칠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첫번째 단계에서 두번째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과는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림움이다.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가 된다.
심리적 반응의 두번째 단꼐로 들어선 그 사람은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져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워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부끄러우면, 이제 앞으로 지금 당장 작은 것 부터 우리 삶을 변화시켜가야 한다.
우리는 흥청망청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있지 않는가!!
유태인들과 우리 나라와 역사는 흡사하다.
유태인들은 독인의 나치에게 고난을 겪었고, 우리 나라 선조들은 일본인들에게 고난을 겪지
않았는가!
우리의 선조들, 독립운동가들에게 우리는 정말 감사함을 매일 잊어서는 않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역사도 잊어 버린채 자신의 일상에 하루 하루 허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나 자신만이라도 정신차려서 하루 매 순간을 진심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나 자신으로 부터 시작해서 점 점 분포 시켜야 한다!!
나 자신은, 세상의 중심은 아니지만 그런 착함의 강함에는 중심이 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