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피터 드러커 지음, 남상진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피터 드러커 저/남상진 역 | 청림출판 | 2006년 02월

 

 


드러커의 은퇴와 한가한 때.

친구들로부터 "더 이상 일을 의룁다는 것은 그만두고 은퇴하면 어때?"
아내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은퇴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게 '은퇴'라는 단어는 없다.

수첩을 꺼내 들고는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일정을 보여주었다. 빽빽히 예정이 들어 차있는 것을 내가 확인하자 " 이것이 '은퇴'라네" 라고 했다.

"한가한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네. 내 경우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책을 읽지,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집중적으로 말이야."
즉 늘 바쁘다는 말이다.

여기서 피터 드러거에게 없는 것 두 가지.

1. 은퇴.
2. 한가한 때.


은퇴와 한가한 때.

누군가는 은퇴를 생각한다.
지금 한창 불태울 나이에 말이다.
그런 현상은, 자신들이 하고 싶어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은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은퇴하면, 평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어릴 때 부터 교육을 " 나 " 라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할 부분인것 같다.
대부분, 그런 자상에 대해 질문하는 때는 거의 사춘기 시절에 많이 하다가 방황을 하게 되고
그 이후 불안정한 상태에서 성인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런 중요한 점을 우리는 방관하듯 쉽게 생각하여 넘어가니, 그것이 나중에 시간이 되어서는

곪아 버리면서 무슨 일을 하든 좌절을 겪게 되는 것 같다.

한가함에서는, 자신들이 필요한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하는 부분에서 우리들은 그런것을

놓치거나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휴일에, 집에서 빈둥빈둥 TV보며, 부족한 잠을 자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게 대부분이다.
그런 시간에 자신에게 투자할 부분들을 더욱 고찰 시켜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서, 한가하다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나 역시 은퇴라는 생각은 하지는 않았다.

하고싶다거나 언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 박사의 말에 처음에는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글 쓰기

빠른 속도로 원고를 완성하는 기술 - 세 단계

1. 먼저 손으로 써가면 전체상을 그린다.

2.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 다음 타자기로 초고를 쓴다.

3. 초고와 제2고는 버리고 제 3고로 완성한다.

말해, 3고까지 수기, 구술, 녹음, 타자 입력을 반복하는 것.


이것이 저술 활동의 가장 빠른 방법
매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여 3개월 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1. 글의 전체상을 수기로 묘사한다.
2.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녹음한다.
3. 테이프에 녹음한 것을 타자기를 이용해서 원고화하는 것은 보조원이 대신한다.

문) 그런데 왜 세번째 원고까지 가지 않으면 완성하지 않는 것 일까?
답변) "지금 잡지에 '미래 세계경제'라는 제목으로 장편의 논문을 쓰고 계시는데 그 내용을

가르쳐주시기 않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드러커박사는

" 그것은 안되네. 완성하지 않은 원고에 관해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네. 이 점에 관해서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데, 만일 원고가 완성되기 전에 그에 관해 이야기해 버리면 안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할 정도지. 원고를 다시 쓰면 언제나 처음과는 다른 결혼을 얻게 되네. 그런데 완성 전에 내용을 이야기해 버리면 결론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 몇 번이고 다시 써서 생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나도 군복무 시절, 독서(소설위주)에 푹 빠졌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것이라 표현하겠다.
닥치는 대로 무작정 읽고 또 읽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11분' 을 읽었는데, 충격적이었다.
작가는 남자인데, 소설 속 주인공은 여자.
여자의 입장에서 세밀하게 여자의 성적묘사 정말 굉장 했다.
그래서 나도 비슷한 느낌으로해서 한국적으로 풀어 소설화 시켰는데, 글 을쓴다는 건 정말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체적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은 어느정도 해 볼만한 자신은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싸우는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완성은 했으니..

나는,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필사 했다.

쓰고, 읽고 또 쓰고 읽고, 또 수정하고 읽고 또 수정하고 읽고.

물론 처음에는 대략적인 내용의 줄거리를 적어서 그거에 살을 붙이면서 수정을 하고 했지만 말이다.


창작이란, 정말 항상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한다.


공부

3년마다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면, '세익스피어의 전집을 천천히 주의 깁게 다시 읽는 것 ' 이런 일이다.

3년마다.

그런 사색이 필요한 책, 혹은 심오한 작가의 책들은 그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교수

942년부터 대학교수로 일해 왔다. 내가 장기간 교단에 섰던 것은 '가르침을 통해' 나 역시 맣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동안 끊임없이 배우길 원했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도 평생 계속해서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가르치면서 더욱 배우게 된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즉, 스승이 스승이 아니라 제자도 스승이 될 수가 있는 것이고, 3살 아이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 않는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인이 스승이 될 수 있다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나만의 스승을 특별한 스승을 찾을 필요는 있는 것이다.

드러커 박사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네 살 무렵.
그 이후로 책벌레.

그때 당시에는 책을 읽지 못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미스 엘자는 나의 글쓰기를 고쳐주지 못했고, 미스 조피는 나를 공예가로 만들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배우는 즐거움과 가르치는 기쁨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유능한 교사는 많이 알고 있지만 위대한 교사는 아주 적다.
위대한 교사와 유능한 교사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피터 드러커 박사 자신은, 위대한 교사가 아닌 유능한 교사라고 했다.


학습장을 꺼내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따라 몇 주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학년 말에는 학습 상위 3분의 1에 들 수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학생이었으므로 영화관의 무료 입장권을 얻을 수 있어서 일 주일에 세 번은 무성영화를 즐겼다.
겓가 편리하게도 사무실 건너편에 공립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독일어나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나는 그곳에서 진짜 대학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이들은, 도서관에서 새로운 인생과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로 만들어진다.
이후, 내 자식 만큼은 어릴때 부터 도서관에서 살다 시피 해야겠다.

의무와 임무보다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독서로 인해, 삶을 찾거나 혹은 변화한 사람들이 많다.

그만 큼 책이 가진 힘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한다.

폴라니 저택에서의 크리스마스 만찬 모습

'껍질을 제대로 까지도 않고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식은 감자가 식사였다.

마가린조차도없었다.'


드러커 박사는 '생에 최악의 식사였으며 더구나 그것이 크리스마스 만찬이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칼 폴라니는 영향력 있었던<오스트리아 이코노미스트> 치고의 기자였으며 고액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왜 그런 식사였을까? 드러커 박사는 의문을 제시하자 풀라니 가족은 어안이 벙벙해 하며" 급여를 자신을 위해서 쓰다니 당치도 않아요. 빈은 헝가리 난민으로 넘쳐나고 있어요!" 라고 그를 야단쳤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이런 사고를 갖어야 한다.

사실상 현실이 힘들다고 나 혼자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세상은,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것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조금이라도 나누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는, 그나마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젊은 이들은, 술을 마시거나 성형을 한다거나, 꾸민다거나 하는 돈으로 조금만 아껴서 나눈다면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힘이 모이면 분명 큰 힘으로 만들수 있다!


루스
첫 대면에서 드러커 박사가 " 당신이 내게 편집자가 되어달라고 하십니다만,

루스 씨, 당신은<경제인의 종말> 외에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는 서류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두개나 꺼냈다고 한다.

한 뭉치에는 드러커 박사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영국 신문으로 송고한 기사와 금융기관을 위해 쓴 월간 경ㄹ제보고서가 모두 들어 있었고, 또 한 뭉치는 미국 잡지에 기고한 기사를 모두 모아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기사나 보고서의 여백에는 루스가 직접 쓴 주석이나 비평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타임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갈절했다. 영국의 신문사와의 일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없어질 것이 뻔했고, 미국의 신문이나 잡지사에서의 프리랜서 일도 안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안정된 수입원을 얻기 위해서는 <타임>에 취직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조사보도란 무조건 적대적이어야 한다.'

그는 왓슨이 사내에서 음주를 금지하고 있는 점에 분개하여 그를 '미국판 히틀러'로 부르는 등 개인 공격으로 일관했다.

<전화 통화>
"토마스 왓슨이오. 우리 회사 기사를 쓴 기지와 이야기를 하고 싶네."
"책임자는 접니다."
"그러면 그를 홍보부장으로 초빙하고 싶다고 전해주게나."

'기자를 홍보부장으로 발탁하는 대신에 기사를 버리게 하려는 속셈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왓슨은 "기사가 안 나온다면 홍보부장 이야기도 없었던 것으로 할 것이네" 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사는 읽어 보셨나요?"
"나와 내 회사에 관해서는 언제든지 읽고 있네."

왓슨에게 IBM에 관한 기사는 어떤 것이든 좋은 것이었다.
그는 어떤 기사라도 게재되면 IBM의 선전이 된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왓슨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사 내용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기자가 그에 관해서 진지하게 다루어 기사화했다는 점.

"브라운 씨는 재무에 밝은 사람이었던 것같네요."
"그가 투자수익률을 발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며 최초로 투자 수익률의 개념을 체계화했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듀폰식 재무관리 등 브라운이 고안한 경영관리 기법은 다른 기업이나 관청에서 전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책으로 소개된 적도 없었다.
이 번쩍 뜨이게 하는 혁신이었다.

'이런 조언이라면 마음에 들겠지' 하는 식으로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직장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특정 사람을 편들어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론은 "나는 고독이 싫어. 언제나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PR 이란,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무엇이든 홍보가 가능 하다는 점.

어차피 대중은 좋든 좋지 않든 관심을 갖게 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 홍보가 악이용 되서는 절대 않된다고 생각한다.


에리히 돈브로스키
그는 프로답게 시간에 엄격했다.

"6시 4분,4분 지각이네."
"겨우 4분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마감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6시까지 올 수 없다면 오지 않아도 돼."


마감시간 준수는 신문기자로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검찰관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완성했다.

"검찰관의 이름은?"
"모릅니다."
"다시가서 조사해 와!"
재판소에 다시 가보니 검찰관은 이미 퇴근
그의 집까지 방문 했으나 현관에 나온 집주인은 "이름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결국 어쩔수 없이 수면 부족으로 잠들어 있던 검찰관을 깨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을 메모하는 것, 그것이 두 번째 교훈


나치스돌격대 SA제복을 입은 남자.
그 남자는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였다.

" 우리 신무낫 당대표로내가 임명되었네. 유대인 오너도 해고하고 좌익 유대인 부인을 둔 편집장도 해고할 걸세. 하지만 자네는 꼭 남아주었으면 하네."

시간 약속, 조사, 능력

우리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 들중에 포함된 것들이 아닌가..


스스로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가르치는 것.

당시 드러커 박사의 저작은<경제인의 종말>뿐이었는데 그 것은 정치서적이었다.
다시 말해 드러커 박사는 정치학자로서 시작했던 것이다. 1942년부터 1949년까지 베닝턴 대학에 재직하면서 드러커 박사는 정치이론, 미국 정치, 미국사, 경제사, 철학, 종교 등 폭넓은 주제를 가르쳤으며 '스스로 배운다'는 의미에서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산업인의 미래>와 <기업의 개념>,<경제인의 종말> 초기 3부작이라고 칭해지며,

" 이 세권의 책은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깁존적으로 사회에 관해서 쓴 것."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출신으로 출세한 인물.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을 저급한 독일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우익 정당의 리더들은 누구도 그를 신중히 다루지 않았고, 만일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간단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경고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여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매스콤은 신중하게 히틀러를 다루지 않았다. 만일 히틀러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캠페인을 전개했었다면 나치스의 정권 장악은 저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것 같다.

드러커의 말에 동요라도 했다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회사와 종업원이 이익을 나누는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익공동체와 같은 시스템 흥미를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노동조합 출신의 CEO다운것.
드러커 박사는 찬성 했고,

"이익의 분배가 적으면 조업원들은 바보취급 받았다고 생각하겠지요?"

나름대로의 제안을 했다.


두 사람은GM의 연금제도에 주목하여 회사의 이익의 일부를 종업원 연금으로 거출하는 안을 고안했다. 회사가 이익을 내면 종업원의 언금은 보호되고 조합의 파업으로 회사의 경영이 나빠지면 종업원의 연금 재정은 나빠진다.

<윌슨이 준비한 혁신적 안>

1. 연금 자금이 국채가 아닌 주식에 투자한다.
2. 운용의 프로에게 투자를 맡긴다.
3. 자사 주시겡 대한 투자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4. 한 기업에 연금 자금의 1-퍼센트를 이상 투자해서는 안 된다 등의 원칙.


당신은 어떤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까?

위인들처럼 자신들이 역사에 그렇게 남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처럼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원하고 있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게 될 것인가...

기억해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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