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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시집 ㅣ 문예 세계 시 선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4월
평점 :
교과서에 실린 ‘시’가 아닌 시집을 통해서 시를 접하게 된 건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한문
선생님께선 매 수업시간마다 시를 한편씩 외워오라는 숙제를 내주셨고, 그 선생님 덕분에 서점에서 처음으로 시집을 샀다. 사춘기 시절 내가 골랐던
시집은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시모음집’이었다. 기억나는 시 한편은 ‘클라우디아 애드리에나 그랜디’의 《그대를 생각하는
즐거움》이다.
그대를 생각하는 즐거움
- 클라우디아 애드리에나 그랜디 -
아주 종종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는 끊임없이 내 마음 속에 찾아 들지요.
그대를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은 시간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대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들을 하면서
끊임없이 놀라게 되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요.
이 시를 떠올리면 예전 짝사랑의 추억도 떠오르고, 소녀였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 언젠가
‘릴케’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딱히 잘 알지 못했기에 이 책을 선택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지만 시를 읽으면서 하나둘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책을 펼쳐들고 보통 책을 읽는 속도로 시집을 읽어가다가 목에 뭔가가‘탁’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어
한참동안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띄엄띄엄 페이지를 건너뛰기도 하고, 읽은 페이지를 붙잡고 몇 번씩 다시 읽으면서 그렇게
릴케의 시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래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다.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 R.M. 릴케 -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축제일 같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길을 걷는 어린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실려 오는
많은 꽃잎을 개의치 않듯이.
어린아이는 꽃잎을 주워서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데도
머리카락에 앉은 꽃잎을 가볍게 털어버린다.
그러고는 앳된 나이의
새로운 꽃잎에 손을 내민다.
요즘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나는 이 시를 유난히도 많이 읽었고 또다시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에 담아두었다.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어째서인지 인생은 살면 살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고, 꼬여만 가는 것 같아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저 길을 걷는 아이처럼 언제까지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많은 꽃잎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