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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움 - 불안과 충동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방법
스티브 테일러 지음, 윤서인 옮김 / 불광출판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조화로움’ 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조화롭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걸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조화롭게 살지 못하는 것은 ‘불안’ 때문이었다. 나는 늘 불안하다고 느끼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날 불안하게 만드는지 알지 못했다. 저자는 이렇게 불안을 느끼게 하는 이것을 태어날 때부터 내재되어 있는 광기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정신장애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광기’라는 의미에서 ‘휴머니아’라고 불렀다. 때론 ‘에고 광기’라고 칭하기도 했다. 휴머니아는 에고의 발달 이상과 오기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에고란 우리에게 개별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부여하는 ‘자아 체계’를 의미한다. 즉 휴머니아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고, 이로 인해 평소에 우리의 마음이 부조화 상태에 있는 것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상태가 정상이라고 믿으면서 그것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지만, 심리적 부조화는 우리에게 수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자신의 밖으로만 주의를 돌리고 삶을 끝없는 활동과 오락으로 채우게 강요한다. 또한 우리가 결코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고, 인간관계에 불화도 일으킨다. 하지만 휴머니아는 뿌리가 깊지도 않고 영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평소 심리적 부조화가 말끔히 사라져서 편안하고 행복하고 조화로운 느낌이 드는 순간을 누구나 정기적으로 경험한다. 이때 ‘존재의 조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골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 말없이 손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명상이나 요가가 끝난 뒤에 그러하다. 이러한 조화로움과 온전한 정신은 우리 내부에 항상 존재하고 있지만, 문제는 마음의 표층에 자리한 부조화에 가로막혀서 그 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 책은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휴머니아를 검토하고 그 특징과 원인을 알아보는 것, 둘째는 휴머니아 치유이다. 두 가지 목표 중 첫 번째 목표인 휴머니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는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멈추었고, 나를 돌아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휴머니아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책 읽기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의 둘째 목표, 휴머니아 치유를 위한 방법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휴머니아 치유를 위한 방법은 여덟 단계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여덟 단계 이전에 해야 할 두 가지 전제조건이다. 휴머니아 치유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어떤 장애나 질환이든 이 두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첫 번째는 그 질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증상을 추적하여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다. 휴머니아와 관련해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휴머니아의 문제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전제 조건은 휴머니아가 문제임을 인정하고 그 질환과 직면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거라 생각한다. 곤란한 현실을 단순히 외면하거나 심각하지 않다고 우기거나 때론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을 이겨 내지 못하고 억압할 뿐이다. 나또한 그동안 휴머니아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막상 직면해 원인을 찾는 것은 꺼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미루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물론 때때로 책 내용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면서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고, 내 문제를 다시 외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잠깐씩이지만 만나게 된 내 안의 조화로움 때문이었다. 그 느낌이 참으로 편안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앞으로 저자가 제시한 여덟 단계의 과정을 하나씩 따라해 볼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원하는 진짜 내 모습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