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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꼴레르 :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
유영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5월
평점 :
「깊이를 추구하되 넓이를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융합의 핵심이다.」(p.111)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이 위의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전문가는 바로 깊이만을 추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깊이와 함께 넓이를 동시에 추구하여 융합을 잘하는 전문가가 바로 진정한 전문가이며, 그런 사람들을 이 책에서는 “브리꼴레르”라고 명명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 속의 전문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이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대우 등이 달라지다보니 넓이를 추구한다는 것은 마치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여 질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과다 경쟁으로 인해 남들에게 보여 주기식의 전문적인 기술만이 남게 되는 현상들이 발생하여 마치 로봇과 같은 전문가가 득실 되는 듯하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한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것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융합형의 인재를 지지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금씩 인내하며, 기다리면서 실력을 키운다면 언젠가는 융합형 인재들이 칭송받는 그날이 속히 올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브리꼴레르가 추구해야 될 “실천적 지혜”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아 함께 살펴보면서 글을 마무리해 본다.
「브리꼴레르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쉽게 문서화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이나 몸에 체화된 ‘암묵적 지식’을 넘어서는 ‘실천적 지혜’다.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는 점에서 실천적 지혜는 기존의 암묵적 지식과 동일하다. 하지만 실천적 지혜란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경험으로 체득한 암묵적 지식을 활용해, 조직을 넘어 사회에 유익하고 공정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혜다. 한마디로 실천적 지혜는 딜레마 상황에서도 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에 근거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경험적 지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을 목표로 하는 방향성이다. 선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전문성은 실천적 지혜라 할 수 없다. 브리꼴레르가 아레테를 갖춰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어떤 활동에 종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아레테를 겸비한 브리꼴레르는 자신의 전문성으로 재주를 부리는 교만과 자만심을 경계하면서 덕으로 재주를 다스린다. 한마디로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 상궁이 장금이에게 강조했던 “재주가 덕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철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브리꼴레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손재주꾼’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손재주를 활용해 기교를 부리는 꾼이 아니라,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고 현실 문제에 파고들어 해결함으로써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전문가,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니모스다. 소크라테스는 전문 지식인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인간적 됨됨이를 강조한 바 있다. 치열한 노력과 열정으로 최고에게 주어지는 전문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전문지식과 기술을 나누는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도공의 아레테는 도공에게 요구되는 독창적인 지식과 체험적 노하우뿐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이다. 의사의 아레테는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환자를 내 몸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사랑과 자신의 전문지식을 공동체와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지식인의 봉사정신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 타인을 무시하는 안하무인, 자기 것만 고집하는 외골수는 아레테에 이르는 여정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전문가의 윤리적 양심과 도덕적 책임을 저버린다면 아무리 역량이 탁월하다 해도 아레테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p.279~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