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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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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해문클럽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싱가폴 출신이며, 자신은 뉴욕에서 살다가, 네덜란드 헤이그의 재판소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에는 지난 문학동네 해문클럽의 선정작들과 비슷하게 이민자이자 여성인 주인공의 설정을 두고, 소수자 또는 약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그렇지 않다.
< 친밀한 사이 >, 책 제목과 일맥상통하게 주인공과 그 주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헤이그에서 새로 사귄 친구 야나, 직장 동료들이나, 연인 관계인 아드리안, 야나를 통해 만난 엘리너와 안톤 그리고 재판소에서 일을 하며 반인도적 범죄자인 전직 대통령까지. 등장인물이 한명 한명 등장할 때마다 친밀한 사이는 주인공과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가 주인공의 의사에 상관없이 조금 또는 많이, 분명 친밀했다고 느꼈다.
처음엔 등장인물들이 말할 때 큰따옴표가 없이 서술되어서 한 문장을 놓치면 문단 앞까지 다시 올라가야해서 집중력이 필요한 책이었다. 재판소 이야기 부분은 익숙치 않은 이야기라 흥미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친밀함에 대한 서사를 좇다보니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친밀함이라는 감정 자체가 유동적이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소설은 내내 긴장감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인 케이티 기타무라의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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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나가 찬장을 열어 올리브오 일병과 후추 그라인더를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고, 모든 것에 벌써 제자리가 있음을 눈치챘다.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질투 때문은 아니고 어쩌면 동경 때문일 테지만, 그 둘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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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말로 볼 수는 없는 법이다—이 세상은 제 범속함(구치소의 땅딸막한 담벼락, 일상적인 노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과 제 극단성(그 감방과 감방 안의 그 남자) 사이의 모순에 현상대로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는 오로지 이 세상을 잠깐 보고 난 다음에는 설사 볼 일이 있다손 쳐도 오래도록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목격한 바를, 소름 끼치는 광경이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목소리를 잊는 것은 놀랄 만큼 쉽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잊어야만 하고 실제로 잊는다. 알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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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시선에서 어딘가 그 생각이 드러났는지. 그녀는 갑자기 창피해 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이런 폭로가 우리를 더 가깝게 해줄 만큼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잘못된 때에 서로를 드러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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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그에게 말하려고 작정했던 것들이, 몇 번이고 내 머릿속을 거쳤던 말들이, 우리 사이에 말해질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말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오로지 이 말만을 했다.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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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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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해문클럽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캐나다 최고 문학상인 스코샤뱅크 길러상을 받은 소설집으로 표제작인 <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을 필두로, 1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라오어는 이 책을 관통한다. 두 편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소설에서 한 번씩은 언급되어 있다. 라오어는 중국·티베트 어족의 캄타이 어군(語群)에 속한 언어. 라오스를 중심으로 타이 동북부, 베트남 중부 등지에서 쓴다. [표준국어 대사전 정의]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책 속에서 라오어는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감추고 싶은 것, 또 누군가에겐 뿌리와 같아 지울 수 없는 정체성, 그들의 자긍심이기도, 또는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무언가로 나온다.

실제로 작가 수반컴 탐마봉사가 한 살 때 라오스 난민촌에서 정부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한 일, 그에 따른 경험과 감정이 소설 많은 부분에 녹아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문클럽의 선정도서였던 < 세 중국인의 삶 >에서와 같이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라오스계의 이민자들, 북미 사회에서 대체로 소수자이며, 하류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서글프고 안타까우면서도, 또 따뜻했다. 냉혹한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이겨내기도, 또 단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갈등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받아들이는구나, 하며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장, 노인, 어린이, 여성 등 라오스 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들이 무려 14가지의 짧은 소설로 쓰여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공통된 주제로 이렇게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다니. 번역도 매끄러워 좋았다. 그중 < 저멀리 있는 것 >과 < 지렁이 잡기 >가 가장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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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한마디만 할게. 꼭 기억해! 꼭 기억해야 해! 진심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걸 깨닫지."

< 당신은 너무 창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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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는, 어떤 언어에서든 웃음소리다. 그의 웃음은 부드럽고 은밀했으며 따뜻했다. 어딘가 외로운 느낌도 들었다.

/

드문드문 우리 쪽으로 손을 흔들면 엄마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 우리는 어둠 속 까만 점에 불과했다. 아빠가 우리를 콘서트에 데려오기 위해 치른 대가를 떠올렸다. 그가 다른 사람의 가구를 들어 올려 포장한 뒤 우리는 결코 살 수 없을 집으로 배달하던 시간들을. 랜디 트래비스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의 집으로. 우리가 앉은 곳에서 무대 조명이 그들의 머리를 비추었고 그들은 환히 빛났다.

< 랜디 트래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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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에 이런 차림이라니, 엄마는 대체 무슨 일을 구한 걸까. 한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돼지 농장엔 항상 일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바닥의 똥을 치우거나 작업대로 데려가기 직전 살아 있는 돼지를 씻기는 일. 혹은 수컷의 몸을 문질러 흥분시킨 뒤 짝짓기를 유도하는 일.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엄마가 구했다는 일자리가 그런 게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일은 일이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너무 역겹다고 소리 지르며 땅에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엄마를 창피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참았다. 많은 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고, 엄마 덕분에 이 일을 얻게 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

아빠는 내가 아직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머릿속에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나를 못난이라고 부르던 게 기억난다. 엄마는 외모를 자만하지 말라고 아빠가 그렇게 부른 거라고 말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을 구한 뒤에야 외모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외모가, 나쁘지 않게 생겼다면, 내게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하지만 그 순서를 바꿀 수는 없다고.

/

나는 문 반대편에서 서서,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문구멍의 금색 테두리 안으로 보이는 그를 지켜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손가락으로 문구멍을 막고 가만히 있었다. 그가 나의 눈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지렁이 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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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그녀에게 끔찍한 것이었다. 바라는 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뜻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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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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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해문클럽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세 중국인의 삶은, 모두 귀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한 세가지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실제 귀도라는 곳이 있나 찾아보니 정보가 없다. 소설 속 설정된 귀도라는 곳에 대한 풍경이나, 집이나 교도소와 같은 장소, 물건들을 생동감있게 전해지는 간결하면서 깔끔한 묘사가 정말 좋았다. 귀도라는 섬에 폐가전 제품 재활용장이 들어서고, 그 곳에서 나온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으로 인해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환경 오염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살고, 또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후유증과 병을 남긴다.
조로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인 < 호찌민 >, 영화 카사블랑카의 남자 주인공인 보가트가 담배피는 모습과 닮아 보가트로 불리는 저수지 관리인과 납중독된 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 < 저수지의 보가트 >, 중금속 중독으로 미치광이가 되어 쇠사슬에 묶여 생활하는 형을 둔 청년,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 산을 뚫는 갑옷 >까지. 세가지 소설 모두 간결한 문체로, 중국의 비극적인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서슴없다.

평소 막연하게 낯설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서 중화권의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편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정치나 경제체제가 달라서인지 쉽게 그 문화나 사회상이 와닿지 않기도 해서 기피했던 것 같다.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중동국가들의 소설도 그랬고..
우선 번역도 아주 매끄럽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 전혀 어려움없이, 되레 진짜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과, 다른 중국 소설도 찾아보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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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원을 말하시오."
"벙어리 여인의 두부를 먹고 싶습니다."

/

"수인 번호?"
아이는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9413."
아이의 입술에 너그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아이는 확신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었다.


< 호찌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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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다시 고요가 돌아왔을 때 네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탄피 두 개를 주웠어. 나한테 하나를 주고 하나는 자기가 가졌지. 네 아버진 한 마디도 안 했어. 너도 알다시피 보가트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잖니.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이 마음에 들었어. 그이에게 그 탄피들은 이후 우리를 남편과 아내로 묶어주는 계약의 증인이었던 셈이야."

/

"날 원망하지는 않지?" 그가 물었다. "방법을 생각하느라 너무 몰두해 있었어."
"무슨 방법?"
"3천 위안을 구할 방법. 할머니랑 통화하는 소리 들었어."


< 저수지의 보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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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중국의 성모마리아>라고 불러야겠다."
그는 이 문장만큼은 전혀 더듬지 않고 똑똑히 발음했다.

/

천산갑이 멸종한 까닭을 이해하려면 중국 전통 의학의 특이한 시적 감수성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박쥐는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므로 박쥐의 똥은 실명에 특효약이 확실하고, 해삼은 남근과 닮았으므로 정력제로 그만이며 해삼을 먹으면 해삼만큼이나 거대한 성기를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천산갑의 경우, 중국인들은 산을 뚫는다는 그 동물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깊은 동굴과 어두운 협곡이 자리한 산보다 여인의 몸과 비슷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천산갑 고기를 먹으면 당연히 여인의 신비스러운 동굴을 천산갑만큼이나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


녀석을 어미와 함께 묻어주지 못한 게 안타까워. 그 천산갑계의 성모마리아, 몸을 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그 비늘로 뒤덮인 공은 가건물 안에 묶여 있는 아들을 씻겨주던 우리 어머니의 손만큼이나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내 그림이 이렇게 극도로 간결해진 건 바로 그래서야."


< 산을 뚫는 갑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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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불행한 아이 문지 푸른 문학
유니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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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안도하는 마음, 이보다 슬픈 마음이 있을까. 그 슬픈 마음을 담담하게, 결국에는 서로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해내는 아이들이 나온다.

소설 < 나보다 불행한 아이 >에는 친아빠 얼굴도 모른채로, 우울증에 걸린 엄마에게 방치된 아이 달아와, 교회 베이비박스에서 버려진 아이인 찬이 있다. 그 두명의 시점이 번갈아 전개된다. 소개된 내용으로만 보면, 누가 더 불행한지 비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다 읽고난 입장에서 보았을 때, 책의 제목처럼 불행한 아이는 없다.
달아에게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귀여운 동생 유지가 있고, 대가없이 엄마를 대신해 그들을 보살펴주는 옆집 아주머니도, 존재도 몰랐던 손주들과 기꺼이 함께 사는 할머니도 있다. 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려졌지만, 마음씨 좋은 부부에게 입양되어 친아들인 형과 차별없이 키워주시는 부모님도 만났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그렇듯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비슷한 아픔으로 둘은 친구가 되고, 상처를 주고 또 치유하면서 성장한다.

아이들의 심리를 단순한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현들로 청소년은 물론, 초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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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달아는 아빠의 얼굴만 모르지만, 찬은 부모의 얼굴을 모두 모른다. 달아는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불쌍한 아이도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


달아는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할머니를 보며 씽긋 웃었다. 할머니도 씽긋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그 당시 나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 그것으로 인해 너무 소중한 것을 잃었어."
"소중한 거라면?"
"처음엔 자유를 잃었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나 자신을 잃었던 거야."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른 사람에게 찬사받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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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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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2 벽 SF 보다 2
듀나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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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주제가 주어지면 연상되는 것들을 통해 글을 쓰는건 흔한 일이다. 논술이라든지, 글짓기, 간단하게 삼행시 같은 것들은 일반인들도 줄곧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것이 SF의 범주로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가지 사물, 물질을 주제로 SF 단편 소설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능력에 감탄한다. 또한, 이 한가지가 1개의 의미로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의미로 넓혀진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래, 지금 너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방패막이 아니라 벽이라고 불러."

< 월담하려다 접천 > 이서영

•••

벽이 있다는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방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건.

< 무너뜨리기 > 이유리

•••

"넌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엄마한테 들었어. 엄마는 엄마의 엄마한테 들었고."
가장 중요한 지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엄마가 죽거나 아기가 죽으면 이야기는 끊어지고 경험과 지혜가 사라진다. 검은깃털은 그래서 무르무란을 바위 벽에 새겨야겠다고 결심했다.

< 무르무란 > 정보라



이번 SF보다 vol.2 — 벽. 인트로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벽은 나누고 제한할 수도, 열고 연결할 수도, 하나의 세계가 될 수도 있다. 물리적인 벽, 심리적인, 가상의, 또는 실제의 벽. 각각의 단편들이 어떤 벽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어떤 벽을 마주할지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우리들도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마주한다.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뒤엔 하얀 벽이 있다. 오늘만해도 나와 맘이 맞지 않는 아빠에게 벽을 쌓다가 금세 허물었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벽이 무엇이고, 난 그것을 부술지, 기댈지, 세울지, 뛰어 넘을지 생각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게시물입니다.
#SF보다 #SF보다_벽 #SF보다_서평단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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