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DB에는 저자가 구병모, 김애란, 서유미 작가님만 보이는데 총 작가는 여덟 분이시다.

김애란 작가님, 구병모 작가님, 장강명 작가님의 글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라 마음이 갔던 책이었는데 책 안의 저자 소개를 보니 다른 작가님들이 집필하신 책 제목들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던 책들이다.

 

 

요즘 내 눈에 들어오고 있는 책인 『가만한 나날』을 쓰신 작가님이 김세희 작가님이시구나.. 단편 『가만한 나날』이 이 책에 실려 있다는 것을 알고 뭔가 땡잡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책에 대한 기대감은 처음보다 더 커지고, 가장 먼저 머리말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다른 책들의 머리말과는 좀 다르다.

이 책이 어떤 목적으로 출간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니 우리 작가님들과 이 책을 펴 내기 위해 일 년이란 시간 동안 고생하셨을 분들의 마음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이상한 감정이 찾아온다.

머리말을 옮겨 적기는 또 처음인듯한데 그래도 내 마음을 건드렸던 문장들이니 옮겨본다

 

 

문학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텍스트입니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는 개인의 삶과 당시 사람들의 욕망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지도가 바로 문학입니다. 문학을 삶의 안내서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 가진 본질적인 기능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을 엮은 사람들은 모두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중략)

이 시대의 사람들은 노동을 공부하고 있을까.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질문은 좀 더 좁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문학 수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니까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취업 문제는 연일 뉴스의 톱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노동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진다고 합니다. 누구나 일을 하기 때문에 노동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덜 가르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 주고 그것이 이 세계와 어떤 고리로 얽혀 있는지 조금 더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이유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제자들과 함께 '일'을 화루도 진정한 보충 수업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텍스트로 삼고,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할지. 이렇게 엮은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졸업한 우리의 제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 줄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고 토론이 오고 갔습니다. 글을 썼다 지우고, 집었던 작품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내려놓는 일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문학을 업으로 삼은 평론가들과 출판 관계자들에 대한 섭섭함에서 출발했습니다. 젊은 세대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서고를 뒤져 깊은 잠에 빠진 70~80년대의 노동 문학을 끄집어내는 것은 주저되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세상은 청춘에게 더 가혹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와 목적들로 1년이란 시간을 거쳐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이런 작가님들과 출판 관계자들이 계시다는 것이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에 아주 조금은 든든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게 만든다.

 

 

「어비」 _ 김혜진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비를 못마땅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뭐랄까. 어비에겐 늘 사람들을 밀어내는 기운 같은 게 있었다. 여기까지라고 금을 그어 놓고 내내 그 경계를 지키는 데 필사적인 사람 같았다. 그게 뭐든 일단 가까이 오려고 하면 고개부터 저었다. 그런 반응이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고 위축시키고 괜한 짓을 했다고 자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p18

 

 

아닐걸요. 걔 일은 잘했잖아요.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팀장이 짜증을 냈다.

일만 하면 그게 잘하는 거야? 도대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팀장이 한마디 더 했다.

종일 일만 하면 그게 잘하는 거야? 일만 하면 되나? 일만 하면 돼? p23

 

 

다들 말로는 부탁이라고 하고 아주 당연하게 사람을 부렸다. 나는 몇 정거장 떨어진 도서관에 가서 대출 기한을 넘긴 책들을 반납했다. 주문서와 영수증을 들고 백화점 여러 군데를 돌며 주문한 물건을 찾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과 신발을 교환했다. 견인된 차를 찾으러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차량 보관소까지 간 적도 있었다. 너무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이렇게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가까워질 테고 그러면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 있겠지. 일다운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p34

 

「가만한 나날」 _ 김세희

게다가 내가 지금껏 뭔가를 사고 찾을 때마다 검색해 참고했던 블로그 후기들도 죄다 업체를 통해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털의 로직을 알면 알수록,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글이 상위에 노출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맛집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일수록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고 참조하기 때문에 시장이 되는 것인데, 시장이 되면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는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경제구나.

나는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약간의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p51

 

 

동네 슈퍼 진열대에는 치약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 중에 목록에 없던 게 뭐더라.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는데, 문득 피로가 몰려왔다. 검색된 것은 미백 기능성 치약 후기들이었다. 전부 광고였다.

이놈의 쓰레기 포스팅들 진짜 짜증 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작게 웃었다. p64

 

 

「기도」 _ 김애란

문화상품권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란 게 얄팍하고 보잘것없으리란 걸 알았지만, 실직자가 갖는 하루분의 자책감 정도와는 교환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p79

 

 

도서관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을 때도 서로 같은 처지라 어색하고 불편했다던데. 그 먼 노량진에서도 동창 몇을 더 봤다고 한다. 언니에게 꽃 같은 20대를 칸막이 안에서 보내는 것보다, 지인들의 환한 안부보다, 자신이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소읍의 추상적인 '시선'이 더 곤욕스러운 듯했다. 시골의 무책임하면서도 집요한 시선 말이다. 한 아저씨는 합격자 발표가 날 때마다 우리 집에 들러 꼬박꼬박 결과를 물어 왔다. 이미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부러 집까지 찾아와 "어떻게 됐나?" 물었고, 한참 자식 자랑을 한 뒤 사라지곤 했다. 언니의 얼굴은 어른을 대하는 예의와 낭패감, 미소, 수치심이 섞여 형태를 갖추지 못한 반죽처럼 흔들렸다. 명절 때도 친구 결혼식 때도,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p82

 

 

우리는 찌푸린 눈으로 지도를 살피며 헌책방을 돌았다. 이 책방에서 갸웃거린 뒤 저 가게로 가고, 책이 다 나갔다 싶어 또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불현듯, 그리고 부끄럽게 서울대학교 근처 헌책방에서는 9급 공무원 책을 팔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국가 고시 문제집 중 사법·외무 고시를 비롯해 5급·7급 공무원 책은 많았지만, 9급 관련 교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불찰과 빈손을 어찌할지 몰라 서둘러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p85

 

 

- 어디야?

나는 다 왔다고 한다. 언니가 일러 준 대로 역 앞 정류장에서 5515번을 탄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왠지 모르게 그들 모두가 서울대학교 학생처럼 느껴진다. 존경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존경심이 일어난다. p86

저 아래 서울이 있다. 멀리서 보는 서울은 어딘가 더 가난해 보인다. 혹은 가난하기 때문에 멀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p94

 

 

다른 글에 대한 밑줄긋기는 다음에 다시 옮겨 적는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