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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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 김제동 님의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아직은 이 호칭이 조금 어색하다.) [그럴 때 있으시죠?]를 읽고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난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책 표지에 적힌 대로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이다. 처음에 김제동 님이 이 책을 쓰셨다고 했을 때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헌법이라고? 헌법에 대해 썼다고??' 이게 무슨 말일까.. 싶어 읽어보게 된 책. 많은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이 책을 잡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법'이라는 이 한 글자는 괜히 어렵고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는 느낌이 나에게 있었다. '법'이라고 하면 우선 내가 지켜야 할 무언가를 주루룩 나열해 놓은 느낌이 먼저 드는데 서문에 적힌 "헌법은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것'이더라고요."라는 말에 내가 아는 헌법이 어떤 게 있을지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하였다.

매체를 통해 참으로 많이 들었던 단어 '헌법'.

본문 상단에 '헌법 몇조 몇항'을 초록색으로 적고, 그 위에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로 그 뜻을 심플하게 표현해 두니 법이라는 게 전보다는 훨씬 편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김제동 님은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계의 좌우 범위는 보통의 우리들보다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모습들.. 너무 사소해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들도 그의 시각에는 어김없이 걸려들고, 그가 그것들을 말과 글로 참 잘 표현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하여 또 한 번 하게 되었다.

말과 글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함께'라는 말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또 가장 어려운 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너를,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게 헌법이란 걸 우리가 익숙한 상황과 단어들로 잘 풀어낸 책이란 생각이 든다.


헌법은 국민이라는 권력자와 그 자손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거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짜릿합니까. p20

법은 늘 힘 있는 사람의 칼이었지, 힘없는 사람들의 지팡이였던 적이 없었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헌법은 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딛고 건널 수 있는 디딤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p26

또 놀란 건 뭔 줄 아세요?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알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다시 잘 읽어보면,"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헌법 전문의 주어가 ‘대한국민‘이에요. p37

따라서 법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함께 헌법 해석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헌법 전문의 뜻이고, 헌법 정신이니까요. p40

우리가 원래 당당한 권리와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주인으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무릎 꿇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 우리를 잘 좀 대우해주자고요. p44

저는 정부와 싸운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제가 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죠. p70

우리가 살다보면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때가 있잖아요. 아침에 변기에 앉아 있다보면 치를 떨 때 있잖아요. 갑자기 남들은 모르는 나의 어떤 낯부끄러운 일이 떠올라서. 자다가 문득 떠오른 어떤 생각에 갑자기 이불을 차면서 "아오, 내가 그때 미쳤었나봐"하기도 하고요.이런 건 거창한 염치가 아니고 자기를 되돌아보고 돌이켜보며 반성하는 거죠.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이런 건 내가 잘못했던 것 같다.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 고치겠다."하고 용기 내어 사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행동이 바뀌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습관적으로 사과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자기 잘못을 돌이켜보고 용서를 구하는 게 진짜 용기가 아닐까 싶어요. p86

우리는 선배들의 음덕과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이죠. 나무가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 공기에 기대고 서 있듯이, 우리가 그냥 사는것 같지만 수많은 선배들의 희생 위에 서 있고, 우리의 삶은 우리 후배들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p133

덧붙이자면,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옳음과 그름의 싸움이 아니래요. 그러면 벌써 끝났죠.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래요. 그들이 봤을 땐 그게 옳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자. 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49

말하는 게 직업인데 말하려고 할 때마다 덜컥덜컥 걸려요. 그래서 차라리 침묵하자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제일 화가 나요. 마음껏 얘기하고 싶은데, 이렇게 얘기하면 뭐라고 할까, 저렇게 얘기하면 시비 걸지 않을까....,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어쩌면 그게 제일 무서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알아서 불안하게 만드는 거요. 혼자서 온갖 검열을 하게 되잖아요. p154

많이 배우지 못했더라도 이 공동체 사회에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면서, 배고픈 사람 보면 먹이고 추운 사람 옷 입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요? p284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갑이었다면,지금까지 거대 언론사들이 갑이었다면,지금까지 전문가가 갑이었다면,우리 헌법 정신이 살아 꿈틀거리는 세상을 만들어내서 국민이 갑인 세상을 열어나가는 것, 한반도에서 다른 나라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대한민국이 갑인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 그리고 경제 구조에서 재벌이 갑인 시대가 아니라, 국민경제가 갑인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 정치 권한에 있어서 정치인과 국회의원이 갑이 아니라 국민이 갑인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 그 시대를 우리가 함께 열어나가는 것이 저는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p287

각 인간의 개별적 마음에 집중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그게 제가 요즘 생각하는 사랑이에요. p298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함께 산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용서해주고 맘 편히 살자는 거죠. 다만 용서를 받으려면 진실을 밝혀야 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그렇게 치유 과정을 가진 것이죠. 그래야 상처를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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