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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브릿마리 여기 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재밌게 읽었었다. 나랑 잘 맞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베어타운]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바로 읽고 싶었으나 다른 책에 밀려 이번에 읽게 되었다.
전에 읽었던 세 권의 책들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었고, 읽는 동안 밑줄을 참 많이도 그엇다.
책에 밑줄을 긋고 나서 그 내용들을 블로그나 노트에 필사로 옮겨 적다보면 책을 읽을때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들도 마음에 남는다.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의 문장들은 이번에도 좋다.
조용한 베어타운에서의 하키 이야기인줄말 앍고 읽어 나가다가 좀 지루해지려는 찰나에 내용에 반전이 있다는 얘길 듣고 덮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지금 읽으려고 생각해둔 책들이 많이 있어서 또 언제 그의 작품을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고 싶다.
네가 정직하면 사람들이 너를 속일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라.네가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이 너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네가 오늘 선을 행하더라도 내일이면 잊힐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네가 만든 것을 남들이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들어라. 결국에는 너와 하느님의 일이다. 너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다.
아맛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기에 계획도 단순하다.
엄마는 그들 모자가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고 하고 아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이 나라, 이 도시, 여기 사람들, 이 구단, 의회, 이웃, 사장을 그녀보다 더 고맙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게 엄마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역할은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가 미안하다는 인사 없이 사장실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그들은 구구단도 외우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서로 의지하지 못하면 팀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건 별것 아닌 동시에 엄청난 일이었다.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는 건 말이다.
나이가 들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너무 늦어서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페테르는 평생 스케쥴과 버스 이동과 로커룸과 쪼개진 인생을 살았다. 식단과 훈련 시간, 심지어 수면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치기 가장 힘든 개념이 바로 ‘일상‘이다.
마야는 처음으로 아나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아나의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아나가 자기만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은 들은 대로 달라진다. 아나는 지금까지 줄곧 틀렸다는 말을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원동력이 되는 저마다의 두려움이 있는데, 페테르의 가장 큰 두려움은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에 부족하면 어쩌나, 좋은 사람이 되기에 부족하면 어쩌나, 좋은 단장이 되기에 부족하면 어쩌나. 페테르는 부모를 잃었고 맏아들을 잃었기에 미라와 마야의 레오를 잃을까봐 매일 아침마다 두려워한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식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러게 사는 게 어렵다잖니"라고 속삭였던 어머니.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이 집 식구들이 가장 즐기는 취미 생활은 하키가 아니라 감정 표현 자제하기 게임이다. 언성을 높이면 진다.
가슴이 아프더라도, 지각의 대가를 가르치겠다는 아빠 때문에 초등학생인 케빈이 어두컴컴한 한밤중에 헤드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자는 척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부모의 마음이 편한 것이 아이에게 최선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고, 케빈은 그들의 용인 아래 강인한 아이로 성장했다.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그는 숨어 있는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똑같이 숨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안다.
베어타운에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정신적으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더욱 그렇다.
생애 가장 끔찍한 사건들은 한 가족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유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기 전에 휴가지에서 한 마지막 수영.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슬퍼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상실의 가장 끔찍한 부작용이다.
어떻게 해야 무너진 가족을 재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깨져버린 삶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엔 무엇을 바라게 되는가 하면 행복한 하루를 바라게 된다.
그녀는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처럼 생각하고 있다.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모든 증거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죽음과 워낙 가까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것이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가 될 수 있지만, 아이를 앞세운 부모에게 죽음은 그 무엇보다 정적을 이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엌에, 현관 앞에, 전화기에, 자동차 뒷자석에, 금요일 저녁에, 월요일 아침에, 베갯잇과 쭈글쭈글한 시트 속에, 다락의 장난감 상자 맨 밑바닥에, 부엌 조리대 옆 조그만 의자에, 더 이상 욕조 옆 바닥에 흩뿌려져 있지 않은 축축한 수건 밑에. 아이들은 온 사방에 정적을 남기고 떠난다.
자발적인 선택이었건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건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것이, 리더는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어요, 엄마. 지금보다 한참 더 끔찍해진 다음에서야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까 가야해요."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물 선생님이 설명하기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똘똘 뭉치고 서로 협력한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딛고 번영을 구가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쯤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항상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기적이어도 될 것인가. 얼마나 서로를 챙겨야 하는가.
"커피, 커피, 커피. 여기 사람들은 커피밖에 안 마셔?" 그녀가 투덜거리면 페테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랑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거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하긴 어렵지만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렇게 얘기하긴 훨씬 쉽잖아. 여기는.... 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여기는 문제가 복잡해도 해답은 단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바깥이 어둠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안의 더 큰 어둠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고마워.‘ 아맛도 한 마디로 답장을 보낸다. ‘미안했어.‘고맙다는 한 마디는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인사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 그럴 용기를 내기까지 걸린 시간에 대한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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