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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 박혜란의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 ㅣ 박혜란 자녀교육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9년 4월
평점 :
1990년대 중반쯤 서울대 재학생이라던 신인가수가 실크블라우스를 입고 나와서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날 선 목소리로 노래를 했다. 그 가수가 40대가 되면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따뜻하게 읊조릴 때 그가 좋은 가수, 아니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달팽이> <다행이다> <말하는대로> 등을 부른 뮤지션 이적이다.
얼마 전 이적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우리 엄마는 저를 애가 아니라 독립적인 어른으로 존중해주었어요.”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는 안다. 아이를 어른으로 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아이를 어른으로 대하려면 잔소리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야 하며, ‘엄마가 살아보니까’를 들이대며 참견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을 아이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가수 이적을 비롯한 세 아들을 건축가, 드라마감독으로 키워낸 여성학자 박혜란의 신간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을 읽었다. 박혜란의 전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에서 꽤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일찍이 ‘아이가 원하는 과목만 최소한의 사교육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공부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은 소신 있는 엄마다. 학습(學習)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서 배우기(學)만 하고 스스로 익히는(習)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사실 이것은 아들이 학원가기 싫다며 거부하기 때문에 생긴 어쩔 수 없는, 허접한 ‘소신’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둔 친구나, 동네 엄마들을 만나고 나면 불안이 엄습해 온다. 내가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는 거지 뭐. 박혜란 선생은 고3 아들을 두고 혼자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대. 그런데도 아들이 서울대학 들어갔어.” 그러면 한 친구가 혀를 끌끌 찬다. “그건 박혜란 선생 아들이지, 네 아들이 아니야. 너처럼 사교육 안 시키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거야. 요즘 우리 딸은 시간이 없어서 토요일, 일요일 밤 10시에 과학 과외를 하고 있어.”
“결국 문제는 언제나 부모의 불안감이다. 모든 아이들은 다 나름의 적성이 있고 맘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걸 언제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왜 너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냐, 누구는 벌써 진로를 정했다는데 넌 이미 뒤떨어져도 한참 뒤졌다고 닦달하는 건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초조한 상태에서 자꾸 독촉을 받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를 잃게 된다. 스스로가 나는 공부도 못하는 데다 꿈도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을 잃게 된다.” -----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58
“혼자 숟가락질을 하려는 아이에게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면서 떠먹여 주고, 혼자 걷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기회도 주지 않고 냉큼 달려가 일으켜 주고, 학교에 갖고 갈 준비물을 챙겨 주고 숙제를 대신해주고, 심지어 대학생 자식 수강신청을 대신해 주고, 취업면접장에 따라가는 부모들이 있단다. 한마디로 과잉육아다. 부모가 자기 인생 살 생각을 하지 않고 성인이 됐는데도 아이에게 올인하면 자기 인생을 빼앗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나?” ----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73
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아이와 부딪치면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 진다. ‘학원 안 다닐 거면 혼자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냐? 벌써 두 시간째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어?’ 아들을 보는 내 가슴은 화산 폭발 일보 직전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어떻게 놀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하고 견딜 수 있었는지, 그 내공은 어디서 오는지를. 내공이 있어서 잔소리를 안 했던 게 아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공부는 스스로 해야 잘할 수 있다는 오래되고 간단한 상식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고, 둘째 나 공부하기도 바빠 아이들 공부까지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 살에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면서) 밥과 빨래를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건 눈길도 안주고 나 혼자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슬금슬금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엄마는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냐며 말을 붙이다가 내가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책에 코를 박으면 아이들도 각자 아무 책이라도 가져와서 들춰보는 것이 우리 집 저녁 일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엄마가 책에 몰입한 것이 예기치 않게 아이들을 공부로 이끈 셈이다.” --------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222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대해주는 방법이 이런 것이구나! 대놓고 가르치려고 들지 않고, 엄마인 내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 것. 아이 인생에 끼어들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 하지 않고, 엄마 자신의 인생을 살되, 아이가 따라할 수 있도록 먼저 실행하는 것.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도록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것!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초조해지는 건 당연하다. 엄마가 보는 아이들은 아이들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저렇게 놀기만 하면 좋은 학교 못 갈 거고 그러면 좋은 직장도 못 얻을 거고…. 잔소리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진짜라면 아이들을 안 보고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의 끈을 놓지 말되 아이들에게 고정되어 있는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과연 잔소리할 거리가 하나도 없나 냉정하게 따져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겨우 3, 40대인 나는 앞으로 긴 인생을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것 이외에 무슨 일로 채워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225
부모가 잘 웃고 긍정적이며 자존감이 높고 남을 배려하며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부모가 일부러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그 자녀는 행복이 뭔지 알기 전에 이미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비록 운이 나빠서 행복하게 살지 못했지만 너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해.’ 이처럼 무리한 주문이 또 어디 있을까.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가 행복하지 않다는데 아이가 무슨 수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행복이 어떤 건지 도대체 누굴 보고 배우라는 말인가.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244
언젠가 만났던 이웃 엄마는 아주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원하던 대학이 아닌 이름 모를 지방대학에 가면서 온 집안이 불행해졌다고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매월 수백만 원의 학원비, 과외비를 대느라 자신은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지 못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이제 둘째에게 희망을 걸어볼 거라고 했다.
내 아이가 행복하기 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아이에게 무얼 해줄까 공연히 머리 쓸 필요 없이 먼저 엄마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엄마가 할 일은 그저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행복한 엄마가 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 있다.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네가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할 거다’라는 생각 대신 ‘네가 있기에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P245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를 읽은 나는 아이의 학교 성적을 내 인생의 성적표라 여기며 살지는 않겠다. 아이의 선택을 믿고 기다리며, 아이를 성숙한 인격체로 대하려 노력하겠다. 미래를 위한 자산은 돈이나 학벌이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이라는 박혜란의 말을 믿으며 아이의 성장을 기다릴 것이다.
나의 아들아,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를 읽으면서 엄마는 박혜란 선생 같은 창의적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니 너는 뮤지션 이적처럼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된다! 어때, 아주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