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어 필 무렵 - 드라마 속 언어생활
명로진 지음 / 참새책방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명로진 배우이자 작가의 책을 글글글 필사 스터디 때 처음 접했다. 글쓰기에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읽고 필사해야 하는 필독서이자 길잡이로 완벽한 책이었다. 깔끔하고 쉽게 쓰인 글쓰기 책은 처음이었기에 명로진 작가님의 책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른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하던 찰나, <동백어 필 무렵>이라는 책이 나온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바로 서평단에 신청했다.



제목에서도 티가 나듯이 이 책은 25편의 명 드라마를 보고 배우였던 작가님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동백꽃 필 무렵>을 시작으로 <미안하다 사랑한다> <허준> <응답하라 1988> <미생> 등 다양한 작품이 담겼다. 이 중에서 내가 봤던 드라마는 1/3 정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았던 내용은 <대장금>과 <시그널>이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각이 정말 참신했다. "홍시 맛"을 유행시킨 드라마 대장금을 학생 시절에 봐서 그런가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극 중 장금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는 기억난다. 여기저기서 시기하고 모함하는 바람에 수라간에서 의녀가 되고 거기서도 꿋꿋하게 일어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면서도 그 속에 얽힌 배후를 풀어내는 과정이 어린 나이에도 소름이 끼쳤다.


지금 이 시대로 빗대자면 아주 유명한 5성급 호텔의 셰프가 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모함으로 그 자리를 뺏기고 무얼 할까 방황하다가 의사고시를 쳐서 의사가 되어 그 호텔에 주치의로 다시 들어오는 느낌이다. 두 가지 모두 뛰어난 전문성이 필요하고, 둘 다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직업이다. 나 같았으면 어디 시골에서 주막 같은 거나 차리고 안주하고 살았을 텐데, 장금이는 억울하게 죽은 누명을 풀어야 한다는 이유로 더 노력했을 것이다. 그저 안정적으로 별 탈 없이 살고자 했던 나에게 번뜩이는 생각을 불어넣는 대목이다.



<시그널>은 수사물을 절대 못 보는 사람이 주위에 극찬을 하고 다닐 정도로 내 인생 탑 오브 탑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도 드라마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고, 이 정도 퀄리티라면 해외 수출도 거뜬하겠다고 여겼다. 배우 한 명 한 명의 독보적인 연기력과 상황적 몰입도 덕분에 드라마를 끊지 못하고 연달아 1박 2일 동안 볼 수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너무 무섭고 생생했던 장면 때문에 도저히 용기가 안 났는데 책으로 살짝 기억을 되살리니까 너무 행복했다. 역시 작가님도 김혜수 씨의 연기는 극찬을 하시는구나. 역할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채로운 연기를 펼치셨고, 시그널에서는 시크하지만 마음이 여린 순경 역할이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작가님이 이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최근에 있었던 국감에서도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 그 자체를 보고 싶지만, 과거에는 같은 편이었던 사람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편을 나누고 싸운다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요즘 상담 전화를 걸면 나오는 멘트처럼 그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나는 안 그래'라는 자만에서 비롯된 자기 성찰 부족, 남을 끌어내리고 자신을 띄우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이었나. 이 드라마처럼 과거의 누군가가 지금의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또는 미래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지금 이대로 가도 되는 건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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