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ㅣ 펭귄클래식 1
토머스 모어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그 온순하던 양들이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을 잡아먹게 되었다'

팽귄클래식의 서문에는 등장하지 않는 구절이지만 내가 알 정도면 꽤나 유명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 글이 내가 유토피아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모든 지식인들이 입을 모야 한번은 꼭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라고 이야기하고 평소 관심이 많던 사회과학 분야에 단골로 등장하는 책이라 솔직히 지금 읽은 것도 늦은감이 없지 않은거 같다. 유토피아가 씌여질 당시의 상황이 모직물 공업의 발전으로 양모의 수요가 늘자 양의 사육을 위해 감자 밭을 목장으로 만들어 엄청난 기근이 찾아오게 되어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게 되고 급기야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는 내용,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던 시절에 씌여졌던 이 작품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종교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와 끝을 모르고 달리는 산업화로 인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평등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요즘의 우리 사회와도 어쩌면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을 집중해서 읽게되었다. 첨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어서 긴장하고 읽었던 탓인지 몰라도 생각보단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전반적인 지식이 없고 스토리 형식으로 내용을 흡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냥 완독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아주 유익한 작품이었다.


일단은 이 작품은 워낙에 유명하다 그리고 서문에서도 밝혔지만농담을 즐겼던?! 작가인 토마스 모어는 곳곳에 애매모호한 의미의 장치 혹은 단어들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일단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문외한인 나로써 모든 걸 알고 흡수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래의 구절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천천히 읽어내려 갔었다.

10 page

그러나 ‘유토피아'라는 이름은 다른 명칭의 의미, 즉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는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권과 2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라파엘 논센소 라는 인물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곳의 상황을 소설 형식을 빌려서 쓴 글인데 본격적인 유토피아의 이야기는 2권에서 부터 등장한다. 실제의 이야기처럼 씌여진 소설형식 이라는 이런 설정 자체가 1516년에 씌여졌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모어는 자신이 살고 있었던 당시의 영국의 상황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 었던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라면 어떤 나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하나의 대안을 라파엘 논센소라는 인물을 통해서 풀어내었던건 아니었을까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을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나를 끌었던 요소는 꼭 글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의 정책과 정치적 상황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근무시간 등등 상당히 디테일하게 전개해가는 방식이 꼭 어떤 대선후보의 공략과도 같이 들렸었다. 거의 500년 전에 저런 세상을 꿈꿨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권력은 분산되고 사람들은 돈에 욕심이 없으며 보석보다 철이 더 귀한 세상이며 먹을 만큼만 버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정말이지 멀지 않은 예전에 사람들을 흥분케 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를 연상 시키지만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던 그런 과격하고 새빨간 의미의 국가는 유토피아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허구의 세계라 가능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정말 저런 국가를 가질 수 없는건가 라는 회의감 마저 들게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그런 세상은 당연히 오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욕심이 경쟁을 부추기고 그럼으로써 질 좋은 상품과 더 많은 재산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주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걸고 있는것 같다.


스웨덴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민주주의라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사민당이 40년 넘게 집권을 하면서 국민의 복지는 세계 최고가 되었고 그 나라 역시 우리나라 처럼 재벌이 있지만 임금소득자기금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시스템을 도입해서 권력이 재벌에 의해서만 돌아가는게 아니라 노동자도 동등한 위치의 자격이 주어지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느껴보지 못한 복지를 그들은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뉴스를 접하기도 힘들뿐더러 이런 정보에 다가가려면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위 정치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가 제일 이라는 주문에 걸려 스스로를 경쟁에 내몰고 고통을 받고 있는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모직물 공업의 발전으로 양모가 필요해 농지를 양에게 내어주고 그때문에 사람은 굶어죽고 도둑질을 하여 죄를 짓고 사형에 처해졌던 당시의 영국에서의 토마스 모어에게는 유토피아같은 나라가 필요했을게 분명했을 것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는 조심스럽게나마 스웨덴이나 핀란드 처럼 조금씩 천천히 이런 나라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희망을 갖게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일이 가능하기 까지는 이런 훌륭한 문학적 유산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루소의 급진적 민주주같은 사상이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어 내지 않았던가 유토피아를 읽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과학 도서들을 읽으면서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국가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건가? 우리 스스로가 포기한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역시 회의주의자인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꿈을 꿔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유토피아의 어원은 어디에도 없는 나라지만 인간은 갈수록 평화를 갈망하게 되고 또 그에 맞게끔 진화를 하는게 아니겠는가 조심스럽게나마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꿈꿔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는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것이 적지않은 실망으로 다가왔는데 무신론자인 나의 관점에서는 토마스 모어도 자신의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는 종교적 철학을 작품에 접목을 시켰고 그게 큰 부분을 차지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제일 잘 살고 평화로운 유럽인들은 대부분 종교를 버렸다. 종교가 주는 갈등을 없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평화로운 국가가 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고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문장을 적으면서 글을 끝낸다.

74page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조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살도록 방치합니다. 결국 그들이 자라나서 성인이 되고, 어린아이 때부터 운명적으로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돼 있었던 범죄 행위들을 저지르게 되면, 사람들은 그들을 벌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도둑들을 만들어내서 그 도둑질에 대해 징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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