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와 허버마스의 '광기의 시대,소통의 이성'에 언급되어 지는 이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21c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대부터 중세를
거처 근대까지 오는동안의 서양의 철학에 대한 무조건 적인 , 유행같은 학문의
일부일 뿐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철학 속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또한 정치,경제 ,사회,역사 그리고 문화적으로 너무나도 이질적인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우리가 받아들임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쩌면
근대로 접어들면서 절대권력이 소멸된것 처러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치밀하고
시스템적으로 우리의 인간세계를 통제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러한 부작용
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소통의 세계로 진일보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21c의 우리
들을 보자.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보급으로 누구나 정보를 유포 및 취득할 수있고
선거를 통해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의사결정을 할 수 도 있으며,법의 시스템에 의해
개인은 권력이나 기타의 것으로 부터 신체를 보호받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익집단을 만들어 이익을 실현하기도 한다. 외형적으로는 너무나도 체계화
되어 있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 우리에게 푸코와 하버마스가 왜 그리도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일까?
푸코에게 서구의 근대 이성은 과학의 진리의 이름으로 비이성적인 것들을 배제
하고 타자화하는 폭력이엇다. 그 폭력은 물리력이 아니라 지식을 매개로 매우 정교
하게 이루어 졌다고 말한다. 근대인이 주체적인 것은 자기 내면에 스스로의 사고와
행동을 통치하는 도덕원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종속적인 것은 그러한
도덕원칙이 자신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만들어져 강제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가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은 미세한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 전략을 구축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태를 한
꺼번에 해결할 수있는 보편적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이점이
하버마스와 거리를 두고잇는 철학이다. 하버마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18c 서유
럽의 부루주아 공론장에 대한 역사적 관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평등한 주체로서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하면
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현대사회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
적 의사소통의 영역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 답을 찾을 수 잇다고 말한다.
우리가 서양의 근대이성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푸코와 하버마스의 이성에 대한
이론이 너무나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어느 하나를 취할 수 있을만큼 부족함이 없
다는데 있다. 이책은 푸코와 하버마스가 이러한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어쩌면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유년시절로 거슬로 올라가 기술되어 있기 때문
에 독자들이 두사람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혹은 받아들이는데 더 용이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동기란 그 결과만큼이나 중요한데 그들이 그러한 철학적 사고를 하
게된 배경이 서술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그들이 말하는 근대의 이성을 이해
하고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받아들인 그들의
생각들을 우리사회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가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학문이 현실
에 적용되지 못하고 역사적인 발자취만 따른다면 그 가치는 의미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시스템에 의해 의도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
는 사회, 대화와 타엽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도 혹은 아닐수도있으나 우리
가 이러한 논쟁을 하는것은 고대에서 근대로 단어와 형태만 바뀌고 본질은 그대로
인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것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쉽게 서술되어 있
으며 두 사상가의 뚜렷한 차별성을 다시 한번 받아들이는데 편하도록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