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어려서부터 참 소설을 좋아했다. 잠도 밥도 마다할만한 유일한 이유였고, 종종 책을 읽느라 공부를 할 수 없어서 불안해야 했을만큼.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를 일찌감치 생각해보았고, 답도 얻었다. 난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을 탐닉했던 것이다. 책을 통하는 것만큼 합벅적인 방법은 없지 않는가.

아 그렇다고 내가 '엿보기'를 즐겨했다는 것은 아니다. 남의 삶을 들여다볼 방법은 다양한데 - 예를 들어 소설 대신 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책을 탐닉한 것은 그 다양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심리, 그리고 그 심리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빚어지는 역학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난 사람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을 유난히 애정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소설을 읽을 수 없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도 많았지만 소설만큼 날 정신 못차리게 하는 책은 많지 않았다. 많은 책들을 순간순간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은 숙제하듯이 독서를 마무리하곤 했다.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인터넷 서점을 헤매던 중 우연히 발견해서 클릭했던 것 같다. 그렇게 구입해 놓고는 한참을 방치해 놓았다가 부산 학회 가는 길에 기차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이 책을 동행한 이유는 짐이 많았고, 이 책이 내가 읽으려고 구입해 놓은 책 들 중에 가장 가볍고 작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치 한동안 그리워했던 맛의 음식을 만난 사람처럼 풍요로운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힐링'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내가 충만해진 것은 내가 소설 자체가 그리웠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책 속에 펼처진 삶은 다 하나가득 상처투성이였다. 그렇지만 그리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이제는 삶이 더이상 상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도 내 삶이 좀 더 낫다고 느껴서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냥한 폭력인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