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뭉크는 <절규>를 그리기 전인 1892년 1월 어느날 일기장에 자개구름을 목도한 듯한 글을 남겼다.
해질녘에 친구 두 명과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멈춰서서 난간에 기대어 말할 수 없는 피곤을 느꼈다. 불의 혀와 피가 검푸른 피오르드 위 하늘을 찢는 듯 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나는 뒤로 쳐졌다. 오싹한 공포를 느꼈고 곧 엄청난 자연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뭉크의 일기
뭉크의 '절규'는 정신착란적인 자신의 심리상태를 그린 게 아니라 실제로 그가 본 자개구름에 덮인 하늘을 그렸다는 이야기이다.
정신착란적인 심리상태를 그린 그림이라는 감상을 들어본 적이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명확한 창작 스토리가 남아 있다는 것도 참 황당한 일이다.
뭉크의 일기는 '절규'의 기원?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지만, 내가 정말 놀라웠던 부분은 '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였다.
뭉크가 오싹한 공포를 느낄정도로 충격적인 자연의 비명소리를 듣는 순간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조금 소름끼쳤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눈앞에서 놓치고 있을까? 그리고 내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을까...?
Chapter2 물리학자의 미술관
신을 그리던 빛, 인류의 미래를 그리다.
'꿈의 디스플레이' 퀸텀닷 기술을 중세시대 성당에서 만나다.
성당하면 생각나는 익숙한 풍경중 스테인드글라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햇빛이나 조명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며 신비롭게 빛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도안에 맞춰 색유리판을 잘라 납으로 붙여 완성한다. 투명한 유리에 철, 구리, 코발트 등 금속 산화물을 넣으면 다양한 빛깔의 색유리가 되는데, 고온에서 유리와 각종 금속을 녹이는 과정에서 화합물이 나노입자 크기로 변한다. 일종의 퀀텀닷이다.
퀀텀닷은 지름이 수 나노미터 정도의 반도체 결정물질로,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효율이 매우 높은 입자다. 현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퀀텀닷'이라는 기술이 사실은 아주 이전부터 사용된 것이다.
4세기 고대 로마시대 작품인 색이 변하는 '리쿠르고스의 컵'에서도 이 퀀텀닷 기술이 사용되었다고하니 새월이 흐를 수록 인류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오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