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일러스트와 헤세의 그림이 수록된 호화양장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은경 옮김 /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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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다시 읽었을 때 그 때와 비슷한 감동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던 것 같다.
어릴때와 같이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음이  서글플 때고 있고, 어릴 땐 보지 못한 어색한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수레바퀴 아래서>는 오히려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어느 누구도, 그 소년의 조그마한 얼굴에 번지는 무기력한 미소 뒤에는 물에 빠진 한 영혼이 두려움 가득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또한 그 누구도 학교와 아버지와 몇몇 교사의 잔인한 명예욕이 이 멍들기 쉬운 나약한 소년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는 밤늦게까지 공부해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에게서 토끼 키우는 취미를 빼앗았는가? 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가까이 지낼 수 없게 했는가? 왜 그로 하여금 낚시질을 못하게 하고 거리를 마음대로 활보하지 못하게 했는가? 왜 그 하찮고 소모적인 공명심이라는 공허하고 세속적인 이상을 그에게 심어 주었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시험이 끝나고 힘들게 얻은 그의 방학 때조차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했는가? 그토록 사정없이 몰아친 끝에 이제 어린 말은 길가에 쓰러져서 더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수레바퀴 아래서 p167
19세기말 독일에서는 청소년, 특히 군사학교나 기숙학교 학생들의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엄격한 규율과 통제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과 교사들을 비판하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쓰인 교육소설로, 강압적인 학교제도와 아버지, 목사, 학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강압과 이해부족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 정부시험에 합격한 이력이나 아버지와 헤세 자신과의 관계,  만성두통, 불면증 등의 불안증세와 휴학하는 부분도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감수성이 예민한 우수한 소년의 고뇌와, 정신과 육체가 서서히 병들고 망가져가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주 정부 시험에 합격 후 기쁨으로 보냈어야 할 신학교 입학 전의 여름방학조차, 마을 어른들의 기대와 명예욕으로 인해 , 밤늦게까지 선행학습을 하며 보내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입시경쟁과 너무 닮아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준다.

결국 주인공 한스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명확하지 않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를 짓누른 수레바퀴는 자신의 삶의 무게만이 아닌 주변 어른들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나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가 지워놓은 무게를 떨어내지 못하고 짓눌려있지는 않은지.  아이뿐 아니라, 아니 청소년보다 성인들이 꼭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칠 정도로 무리해선 안되네. 그러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거야.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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