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돈의 역사 1
홍춘욱 지음 / 로크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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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의 신대륙

 무적함대의 스페인, 194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영원한 승자인 것으로 보였다.

 신대륙의 발견조차도 잘못된 경로로 항해하던 중 우연의 산물이었고, 잉카와 마야 제국에서 약탈한 금과 은이 고갈될 무렵인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은광이 발견되었고, 1546년에도 멕시코 사카테카스에서 풍부한 은맥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

 

 그러나 금과 은의 급격한 유입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지배층인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들이 대규모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사태가 악화되었다.

 젊은 인력들은 식민지 개발과 운영을 위해 해외로 빠져나갔고, 대규모 전쟁 또한 인구 감소와 생산성을 저하시켰다. ​

"우리 왕국은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금과 은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이 될 수 있었지만, 금과 은을 우리의 적인 다른 왕국으로 보내는 징검다리로 전락한 까닭에 가장 가난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 명나라의 멸망  

 조세개혁으로 부강했던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패하여 멸망하였다.

 과거에도, 현제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실제로 만주 기마병이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산해관을 중심으로 한 명나라의 방어망을 뚫는 것은쉽지 않았고, 명장 원숭환이 서양식 대포를 활용해 치르는 방어전에서 밀리지도 않았다. 결국 명이 망한 이유는 이자성 등이 주도한 농민 반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농민 반란은 왜 일어났을까?

​ 하버드 대학의 티모시 브룩교수는 '기후 변화'가 명나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

 1615년 두번째 발생한 '만력의 늪' 전후로 홍수와 급격한 기온변화 이후 이어진 기근으로 가뭄과 메뚜기 떼의 약탈이 끊이지 않았다.

​ 첫번째 발생한 만력의 늪때에도 정권 자체를 마비  시킬 정도의 재난이었지만, 그때는 장거정이 시행했던 국가 제정에 대한 개혁으로 경제가 안정되어 있었기에 그 재해에 대비할 수 있었다. 

​ 이미 만력제가 치세 내내 재정을 낭비하고, 이민족의 침입이 심화된 것에 기근이 곂치면서 농민 반란이  겆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다. 

# 산업 혁명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인구는  생산력 저하를 가져온다 .유럽에서 주로 재배되던 밀의 생산성이 ​동양권의 쌀에 비해 매우 낮았고, 이때문에  '잉구 과잉'이 발생하기 쉽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안정적인 정세를 이루던 청나라와 일본에서 인구 과잉으로 인한 노동력 저하로 산업 혁명이 일어날 수 없던 것에 반해, 특히 인건비가 높아 인건비 절감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영국에서 산업 혁명을 일으킬 기계가 발명 되었다.

 추가로 명예혁명 이후 낮아진 금리로 인해 공장주 등이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자연스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이후 곡물 수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농업 혁명이 일어났고, 실제로 농업혁명 이후 인구 수는 꾸준하게 증가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늘어난 인구​는 신대륙을 개척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농촌의 '잉여 인력'을 해외로 보낼 수 있고, 해군은 지속적으로 신병을 충원할 수 있었다.

 ​16세기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하여 신대륙의 은과 금을 쓸어 모았던 스페인은 빠져나가는 젊은 인력 탓에 경제 전반에 강력한 인플레가 나타났던 것과는 대비되게 말이다.

​# 우리나라는 왜?

​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은 1960년대 100달러에서 2018년 3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1만 4천 달러의 장벽'을 돌파한 나라는 (일부 산유국과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우리나라와 타이완 두 나라에 불과하다.

 낮은 임금과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토지 소유 분포, 그리고 저학력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던 우리나라는 어떻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 먼저, 미군정의 강력한 통치하에 불완전하게나마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고,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소유하게 된 자영농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를 토대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농업 생산의 증가가 '한계'에 부딪힐 때, 추가적인 성장을 위한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  마침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저금리 대출로 기업을 지원하고, 일정 기준에 미달했을 때 철퇴를 가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때, 수출이 가속화 될 수 있었던 것은 해양 운송 분야의 혁신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 중 열악한 운송으로 보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해결하고자 고안한 '철제 컨테이너 사용'으로 짐을 배에 싣고 내리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하게 되었고,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던 빈 컨테이너 선이 동아시아 국가 항구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가며 '메이드 인 재팬'붐을 일으켰다.

 일본 뿐아니라 동아시아 세 나라 모두 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되었다. ​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망 후에 빠르게 재기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한국전쟁'이라고 들었다. 한국전쟁 발발에 꽤나 기여했을 일본이 한몫 챙기기까지 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트남 전쟁으로 (물론 파병이 있었고 그 후 가슴아픈 사연들이 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 우리나라 제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 마치며

​ 너무도 알찬 책의 내용에서 운에 관련된 이야기를 뽑자니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 책을 처음에 읽으면서 가장 자주, 강하게 들었던 생각이기에 내려놓기가 아쉬웠다.

​ 분명 세상에서 성공의 너무 많은 요소가 운에 좌우 된다. 쉽게는 로또가​ 그러할 것이고, 주변의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나'만 받지 못한 행운의 여신 탓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나는 고사성어는 인생사 새옹지마 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과연 행운이었을까. ​명나라가 천재지변으로 망한것이 정녕 필연인가.  주식인 밀의 생산성 저하로 인구가 제한되는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준비되지 않은 행운은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

 ​타이완과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는데 해양 운송분야의 혁신을 통한 제조업의 성장이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비록 군사정권이었지만 다소 강압적이고 전폭적인, 제조업육성을 통해 기반을 닦아놓지 않았다면 그 행운은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갈수록 세계는 복잡해지고, 당장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으로 환율이 치솟고 있다.

 당장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것으로 피해를 볼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일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지나가듯 행운의 여신이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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