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4 : 1400~1500 - 탐험, 무역, 유토피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4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효정.주효숙 옮김,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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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부흥카페와 시공사 출판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4권은 중세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1400년부터 1500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중세 유럽의 말기로써, 유럽이 중세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서기 15세기는 꽤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갑옷으로 떡칠한 중세식 기사들과 대포 등 화약무기가 공존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도 봉건시대에 비해 중앙집권적인 국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1,2,3권과 마찬가지로, 4권도 단순히 역사를 다루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 시기의 예술, 문화, 종교, 학문, 사회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중세 4권은 크게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실 분량 면에서 보면 역사를 다루는 부분은 꽤 적은 편입니다. 15세기 유럽에서는 여러 면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국가들이 이전의 지방분권적인 봉건국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는 이 변화를 크게 네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a) 군주 개인에게 점차 더욱 집중되는 권력의 칭호 b) 왕조 초기의 합법적인 세력  c) 권력의 실행과 경영을 왕가의 자손들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직접 왕에게 응답하는 인물들에게 위임 d) 외교 및 전문 군대의 탄생. 백년전쟁이 끝나면서 프랑스, 잉글랜드가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스페인 역시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연합하면서 오늘날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원형이 탄생했습니다.

15세기 프랑스 왕국은 백년전쟁 종결 후 용담공 샤를을 패배시키고 부르고뉴 지방을 합병했으며, 1481년에는 프로방스를 합병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장미전쟁 이후 귀족 가문들이 재정비되었고, 군주제가 강화되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아라곤 왕국은 15세기 내내 지중해 방면과 남이탈리아 지역으로 팽창했고, 1469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왕국인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기틀이 닦였습니다. 1492년에는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왕국이 축출되었습니다. 반면 독일 지방은 여전히 분열된 상태로 남았습니다. 프랑스, 영국과는 달리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배력은 대부분의 지방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합스부르크 왕조는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한 자신들의 탄탄한 영지를 가지고 있었고, 16세기 초에는 보헤미아 왕령과 헝가리 북부까지 손에 쥐면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합니다. 지중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 분열된 이탈리아의 주도권을 놓고 패권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16세기 초 스페인 왕가와 독일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카를로스 1세라는 괴물이 탄생했고, 프랑스VS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결구도는 100년 이상 이어지게 됩니다. 한편 동쪽의 발칸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고, 아나톨리아와 발칸에 걸쳐 매우 강력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16세기 초 약할대로 약해져있던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킨 후 동지중해 전역을 장악했으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와 지중해의 지배권을 놓고 대결을 펼쳤습니다.


한편 15세기 유럽은 학문이 큰 발전을 이룬 시기이기도 합니다. 흔히 우리는 중세시대 철학은 종교만 중시했고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이 세속적 가치를 중시했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엄밀히 말하면 옳지 않습니다. 일단 중세와 르네상스의 전환이 갑자기 이루어진것도 아니고, 이 둘이 딱딱 구분되지도 않습니다. 가령 르네상스 시기에도 여전히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플라톤 학파 등 종교학이 매우 발전했습니다 .15세기 유럽의 과학, 수학, 의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문헌들을 받아들이며 적극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금술이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5세기부터 인체해부가 교육적 목적을 위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칙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이를 금했으나, 어느정도 눈감아주긴 했던 모양입니다. 교육적 목적의 인체해부를 처음으로 시작한 곳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교입니다. 인체해부는 교육적 목적 말고 예술적인 목적으로도 도입되었습니다.


건축 면에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흔히 우리가 "중세 건축"하면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건축 외에도 새로운 건축 양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건축양식입니다. 물론 르네상스 건축양식은 15세기까지는 이탈리아에서만 머물렀고,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후기 고딕양식이 여전히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건축양식은 16세기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끝으로, 마지막 80페이지에 걸쳐 매우 방대한 양의 건축물, 예술품 사진과 지도들이 컬러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15세기에는 많은 발전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면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대다수 백성들의 삶은 어려웠고, 기근과 전쟁은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15세기 인노켄티우스 8세 교황의 치세부터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마녀사냥의 양상은 지역별로 매우 다르게 나타났으며, 그 지역의 전통적인 마녀관과 결합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 마녀사냥 초기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체포되었으며 사회 고위층들이 고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대부분의 희생양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의외로 에스파냐의 마녀사냥은 중부, 북부 유럽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에서는 마녀 의심자에 대한 고문과 처벌이 비교적 약했습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17세기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분량문제로 이 서평에 다 담아내진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중세 유럽에 대해 굉장히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더불어 중세 후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많이 깨졌습니다.




PS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악성댓글 사태로 인해 서평제출이 지연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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