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혼후 - 지워진 황제의 부활
리롱우 지음, 진화 옮김 / 나무발전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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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혼후, 지워진 황제의 부활은 한나라의 잊혀진 황제 폐제의 능묘 발굴과 이를 통한 그의 삶의 재조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칭호에 걸맞게 빠르게 폐위된 덕에 존재감이 거의 없던 그의 삶이 재조명된건 2011년 우연히 그의 무덤이 발견되면서였습니다. 근처에 도굴꾼들이 있는것 같다는 주민의 신고로 공안은 조사에 들어갔고, 한 무덤을 파헤치고 있는 도굴꾼들을 즉시 검거했습니다. 이들이 파헤치고 있던 무덤은 즉시 발굴에 들어갔고, 그곳에는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 연이어 발견되었습니다. 부장품들은 일반적인 제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황제들만 소유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5년에 걸친 발굴조사 끝에 그곳은 폐제 해혼후 유하의 무덤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가 묻힐 당시 유하는 황제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몇일이나마 황제였던만큼 그에 걸맞는 예우를 갖췄던 것입니다.

그의 고분에서는 마왕퇴 발굴 이후 가장 많은 양의 한나라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애초에 신분상으로도 유하가 마왕퇴의 묘주보다 훨씬 높았으니 출토품의 양과 질도 훨씬 많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무덤에서는 묘주에게 시중을 드는 용도의 목용들이 수십개 발굴되었습니다. 또한 수만을 헤아리는 죽간, 목간들과 마제금, 인지금, 금병을 포함한 금붙이 300개와 200만개에 달하는 오수전, 그리고 각종 철기, 청동기, 옥기, 칠목기, 도자기, 보석 공예품들도 출토되었습니다. 해혼후 릉의 발굴은 한대의 의식주, 일상생활, 문화, 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파고들 수 있게 해준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발굴된 한나라 시대 기록과 문헌들은 한나라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단면들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저자의 기대대로 선진시대 문헌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많은 부장품을 보유한 무덤의 주인 유하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한 무제의 손자로서 일생동안 서민, 제후, 왕, 황제의 지위를 모두 누려본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였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한무제는 기원전 87년 숨을 거두었고, 소제가 그의 뒤를 이어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소제는 기원전 74년에 이른 나이로 숨을 거두었고, 한나라의 제위는 공백이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뒤를 이어 광릉왕 유서가 황제가 되어야 했으나, 당시 실권자였던 곽광은 그가 황제가 될 자질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무제의 손자인 창읍왕 유하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 역시 곽광의 눈 밖에 나면서 겨우 27일만에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곽광이 구체적으로 왜 유하를 폐위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소제의 장례식 기간에도 주색을 탐한것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유하가 고향 창읍국에서 데려온 대신들만 임용하고 곽광과 다른 노신들을 푸대접한것이 곽광의 분노를 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무덤에서 출토된 문물들과 여러 정황상 증거들은 유하가 주색에만 빠져 지내는 폭군이 결코 아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하는 폐위된 후 창읍왕으로 돌아갈수는 없었으나, 곽광은 그에게 상당량의 토지를 하사하여 먹고 살 걱정은 없게 하였습니다. 폐위된 유하 다음으로 황제가 된 선제는 그의 실패를 교훈삼아 조심스럽게 처신했고, 그는 전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후 곽광이 사망하자 선제는 유하를 해혼후로 봉했고, 유하는 제후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책의 서평을 신청한것은 무덤 발굴 자체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한나라 고분들 중 가장 풍부한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는게 흥미로웠고, 책에 관련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책에서 무덤 자체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관련 내용은 앞부분에 조금 있었고, 책의 내용 대부분은 유하의 일생과 곽광 등에 대한 내용으로 차 있습니다. 사실 책 자체는 그리 재미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유하라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의 일생에 대해 다루고 있고, 한나라 황실의 가족사와 정치 등을 다루고 있기에 이 시기의 역사를 잘 모르는 분들은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한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편입니다. 한무제 이전까지 전한의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있으나, 한무제 사후부터 전한의 멸망때까지는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한무제 사후 곽광과 폐제, 선제 등에 대해 다루고 있기에 이 시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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