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무굴 황제>는 무굴제국 황제들의 일대기와 사생활, 무굴제국의 역사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굉장히 하드(??)할 줄 알았던 저의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분량도 300페이지 이하로 짧은 편이라 저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난이도의 경우, 무굴 제국에 대한 사전 지식이 딱히 없어도 어렵잖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입니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에 인도의 주요 도시와 지방들의 이름을 조금씩 알아두신다면 읽는게 더 편해질것 같습니다. 책 자체는 팩트에 충실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일화들과 황제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무굴제국사에 관심이 있지만 국내에 자료가 워낙 없어 입문조차 힘든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분들은 이 책으로 기본을 배우시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무굴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황제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바부르, 후마윤, 악바르, 자한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 이 여섯 황제의 이야기가 책의 전체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대 초강대국 무굴제국의 황제들은 나름대로의 다양한 개성과 특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창건자인 바부르는 원래 사마르칸트를 정복하여 조상 티무르의 영광을 재현하는게 소원이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델리 술탄 왕조를 정복하고 무굴제국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죽을때까지도 그는 무더운 인도를 좋아하지 않았고 중앙아시아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후마윤은 지나치게 관대한 성격을 가진 나머지 정적들과 형제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고, 치세 내내 반란과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으로 세르 샤에게 제국을 빼앗기고 사파비 왕조에 망명을 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파비 왕조의 도움으로 제국을 되찾았지만, 예배를 알리는 기도 소리를 듣고 도서관 계단을 급히 내려가던 중 굴러떨어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마 역사상 존재했던 지도자들의 죽음 중 가장 허무한 죽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후마윤의 뒤를 이은 악바르는 인도는 물론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황제 중 하나였습니다. 종교적 관용 정책을 베풀어 수많은 신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정복 활동을 통해 무굴제국을 초강대국의 반열로 올려놓았습니다. 사실 이전 후마윤 황제 때만 해도 무굴제국의 통치력은 매우 불안했는데, 악바르 시대부터 비로소 무굴제국은 진정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악바르가 다져놓은 초강대국을 물려받은 자한기르, 샤 자한은 각종 건설활동과 예술 후원을 통해 제국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무굴제국은 17세기에 황금기를 누리게 됩니다.
아내가 숨진 뒤 건축활동에만 매진하던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됩니다. 아우랑제브는 무굴제국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엄격한 이슬람교도였던 그는 사치와 주색을 즐기던 다른 무굴 황제들과는 달리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살았으며, 이슬람의 가르침을 평생동안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는 흔히 알려진것처럼 비관용적이고 잔인하기만 한 황제는 아니었으며, 치세 초기에는 이교도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고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아우랑제브의 데칸 지방 정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돈을 잡아먹었고, 이는 당연히 높은 세금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가의 모든 재물이 전쟁비용으로 쓰이면서 무굴제국의 찬란한 문화와 건축 역시 쇠퇴하게 됩니다. 아우랑제브가 사망할 때 무굴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할 정도로 취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의 사후 황제들이 연이어 단명하고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무굴제국은 50년도 지나지 않아 껍데기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머리속에 오래 남은 사람이 바로 아우랑제브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지만 결국은 제국의 몰락에 일조했다는게 씁쓸하면서도, 아우랑제브에 대한 동정심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굴제국의 쇠망 과정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번외 식으로 아우랑제브 사후부터 세포이 반란 진압과 무굴제국의 멸망까지를 간략하게 다루고는 있으나 말 그대로 "요약"에 불과합니다. 사실 저는 무굴제국의 전성기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쇠퇴기의 역사를 배우는것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700년대 초 아우랑제브가 사망할 당시까지도 초강대국이었던 나라가 불과 50년만에 수도 일대만 간신히 지배하는 껍데기 국가로 전락한것은 예삿일이라고 볼 수 없죠. 이렇게 강대한 나라가 빠르게 쇠망을 한 데에는 분명 굉장히 많은 요인들이 있었을텐데, 무굴제국의 쇠망 과정과 원인에 대한 자세한 고찰이 없었다는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