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상 들었던 생각은 '물리,화학,지리...이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할 때가 과연 있을까? 그 계통의 일을 할 것이 아니라면, 시간낭비 아닐까?'라는 아주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그저 다방면의 모든 과목을 배운다는 것이 비능률적이고 어른들의 무자비한 교육방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오랜시간을...

내가 수학을 좋아했었던 건, 그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수학이라는 그 자체가 좋았을 뿐이었다. 명쾌하게 문제를 풀며 그로부터 대단한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 순간만 행복할 따름이라는 아쉬움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왜 난 더 유용하게 쓰일 외국어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강한 불만과 함께!

객관적인(?)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 머리속이 반짝이는 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 시간죽이기 정도로만 생각되었던 일련의 지식들이 삶에 순간순간 베어져나올때의 신기함이란... 세상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유용한 밑거름이 되어주는가를 알게 되면서의 그 놀라움이란...

난 문,이과의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성향이 무척 마음에 들고, 약간의 불만을 피한다면 그런데로 나의 성격에 만족하는 편인데, 그 기본이 되는 것이 화학과 수학을 좋아했던 이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과면 이과, 문과면 문과! 한쪽을 좋아하고 그쪽으로 매진해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때엔 그렇게도 답답할수가 없었다. 이도저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정신없는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내 성향이 무척 불만이었던 때도 있었다.

조금 더 학문의 영역이 크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영역의 한계나 분리라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 좋을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계속 팽창되고 있는 나의 관심분야의 최고목표치는 '교양'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저 사치품정도로만 느껴지고, 비전문적인 분위기가 물씬나는 단어인 '교양'이라는 말과 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 코드가 비슷하고 흘러가는 생각의 표본으로 삼고픈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 책을 보면서 그 단어의 거품을 완전히 거두어낼수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리버럴하게 받아들이고 어느정도까지는 이해가능한 눈빛 반짝이는 교양인으로의 길로 가는데, 명확히 한번 더 찝어주는 명쾌한 글이었다.

역자 이정환씨가 덧붙인 것처럼, '명문 대학 출신의 교양 없는 지식인보다는 어느 대학출신이든 사회를 위해 봉사할 줄 알고 인간의 소중함(특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줄 아는 진정한 교양인이 국가에는 더 필요한 존재이다'라는 말처럼 교양인으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일 것이라는건 명백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한권씩의 책을 더 읽어갈수록, 한가지씩 세상을 더 받아들여가면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을 매번 느낄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다치바나선생은 그것을 느끼며 살기를 권하는 듯하다. 어느정도의 단계에만 올라선다면, 그가 그린 '앎의 지도'가 그리 낯설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교양인이 되는 것이란 비록 빵을 얻는데 필요한 것들을 쥐어가는 과정은 아닐지라도 좀더 사람답게, 좀더 인간적으로 살아가려는 참된 삶의 정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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