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지죠.
좋은 책은 만질수록 좋아지는데, 나쁜 책은더 나빠지지 않고 그대로 꽂혀 있어요.

퍼시 애들론, 연어알(영화, 1991)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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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래가 등장하는 「발췌록」을 보여 준다. 『성서』의 「창세기」와 고대 철학서에 등장하는 고래부터 라블레와 셰익스피어의 고래, 존 버니언과 찰스 다윈의 고래, 출처 불명의 고래까지. 세어 보니 여든 개였다. 멜빌은이 발췌록을 "어느 사서 보조의 조수"에게 얻었다고 밝혔다.  - P49

그런데 문득 ‘내가 저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들었다. 나는 저들의 얼굴과 직업을 알고,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일하는 일터도 알고, 일하는 습관과 업무의 고단함을 알고 있는데이게 정말 저들을 알고 있는 걸까? 저들에게 나는 그저 매일 택배상자 하나를 들고 와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다가 차례가 되면 다가오는 수백 명의 손님 중 한 명이다.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지만 그 역시 수백 명에게 듣는 작은 웅얼거림일 뿐이다.
한번은 여느 날과 같이 택배를 부치려는데 옆 창구 손님이 직원에게 감사하다며 막대 사탕 하나를 주는 것을 보았다. 사탕을 받은 직원은 물론 그 옆자리 직원까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그 막대 사탕으로 이마를 톡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면서, 도서관 사서로 있던 때에 이용자에게서 받았던 사탕과 과자, 젤리 같은 것이 떠올랐다. 수정과와 오미자차, 직접 만든 딸기 주스까지 ………. 관공서 직원을 멀리서 관찰하고 짐작하는 건 그 마음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웠다.
- P51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베를린 시내를 돌며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두 천사가 나온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자신이 수집하고 기록한 인간의 모습을 서로에게 이야기해 주며 시간을 보낸다. 인간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에 만족하는 카시엘과 달리다미엘은 인간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싶어 하고 급기야 천사의영원한 시간 대신 인간의 선명하고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영화에는 도서관이 세 차례 등장한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산책가듯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드나들고 거기서 다른 천사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모두 묵독을 하고 있지만 천사의 귀에는 책을 읽는소리와 함께 각자의 고민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도서관의 천사들은 각각 흩어져 사람들 곁에 머물며 이따금 그들의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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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을 표시하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고
예방을 약속하고
용서를 구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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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때 은지는 처음으로 잘못하지않아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에 영향을 받고 책임을 지고 때로는 해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도.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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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숫자를 세는 사람들이, 학자들이, 관련인들이 충격과 공황에빠져 있었다. 곤충이 사라지고 있고, 따라서 다음은 새였다. 그 생각만 하면 아득해져서 자다가도 깼다. 또래의 환경운동가들처럼학교를 그만두고 나서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새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종종거리고 있고, 정말 아무도, 안 그래도 죽어가는데 그깟 방음벽에, 유리창에 스티커 하나 붙여주지 않아서 더 죽이고 있었다.
에너지 효율도 형편없다는 유리 건물을 계속 지어대는 것도 싫었다. 홈쇼핑에서 구스 이불을 팔아대고 행사마다 풍등이니 풍선이니를 날려버리는 것은 떠올리기도 징그러웠고…… 그런 화제들을 꺼내면 네가 커서 고쳐, 공부 열심히 해서 고쳐, 하고 아주 우습다는 듯 대견하다는 듯 반응해오는 것도 짜증났다. 자기들이 신나게 망쳐놓은 다음에 어쩌라고? 나중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웃겼다. 언제? 새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 P225

다. 그러니 경아가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은 사실 거짓 희망에 가까웠다. 거짓은 적나라하게 부정적인 어휘로 느껴져서 속으로는
‘대충 희망‘이라고 부르는 편이었다. 업계의 대충 희망이 되고 싶었다. 진짜 희망이 나타나기 전의 대타 같은 희망 말이다. 레드오션 업계에서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자가 있다는걸 보여주면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힘을 얻겠지 싶어서.
- P264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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