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래가 등장하는 「발췌록」을 보여 준다. 『성서』의 「창세기」와 고대 철학서에 등장하는 고래부터 라블레와 셰익스피어의 고래, 존 버니언과 찰스 다윈의 고래, 출처 불명의 고래까지. 세어 보니 여든 개였다. 멜빌은이 발췌록을 "어느 사서 보조의 조수"에게 얻었다고 밝혔다.  - P49

그런데 문득 ‘내가 저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들었다. 나는 저들의 얼굴과 직업을 알고,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일하는 일터도 알고, 일하는 습관과 업무의 고단함을 알고 있는데이게 정말 저들을 알고 있는 걸까? 저들에게 나는 그저 매일 택배상자 하나를 들고 와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다가 차례가 되면 다가오는 수백 명의 손님 중 한 명이다.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지만 그 역시 수백 명에게 듣는 작은 웅얼거림일 뿐이다.
한번은 여느 날과 같이 택배를 부치려는데 옆 창구 손님이 직원에게 감사하다며 막대 사탕 하나를 주는 것을 보았다. 사탕을 받은 직원은 물론 그 옆자리 직원까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그 막대 사탕으로 이마를 톡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면서, 도서관 사서로 있던 때에 이용자에게서 받았던 사탕과 과자, 젤리 같은 것이 떠올랐다. 수정과와 오미자차, 직접 만든 딸기 주스까지 ………. 관공서 직원을 멀리서 관찰하고 짐작하는 건 그 마음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웠다.
- P51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베를린 시내를 돌며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두 천사가 나온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자신이 수집하고 기록한 인간의 모습을 서로에게 이야기해 주며 시간을 보낸다. 인간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에 만족하는 카시엘과 달리다미엘은 인간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싶어 하고 급기야 천사의영원한 시간 대신 인간의 선명하고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영화에는 도서관이 세 차례 등장한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산책가듯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드나들고 거기서 다른 천사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모두 묵독을 하고 있지만 천사의 귀에는 책을 읽는소리와 함께 각자의 고민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도서관의 천사들은 각각 흩어져 사람들 곁에 머물며 이따금 그들의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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