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대 - 열아홉 살 엽기소녀의 반위생학적 사랑법!
샤를로테 로쉬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첫 장까지의 느낌은 음, 그래. 납득. 그 이후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아주 뜬금없이 매우 대담하고 낯뜨거운 피끓는 열아홉 소녀 ‘헬렌 메멜’과 함께 떠나는 인체 탐험기. 그리고 특별부록 ‘헬렌 메멜은 무얼 좋아하고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에 덧붙여 ‘들추고 싶지 않은 헬렌 메멜의 약간의 가정사’. 초반부터 ‘이걸 왜 읽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자리를 잡고 떠나질 않는다. 망설임 없이 맨 끝 장으로 넘어가 보았다. 역자의 후기를 읽어본다. 페미니즘? 인지 어쩐지는 모르겠고, 그 시점에서 어쩐지 가장 마음이 동했던 것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이 소설은 어떤 편견도 없이 독자에 의해 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웃고 싶은 곳에서 웃고, 내던지고 싶을 때 내던질 수 있는, 개인으로서의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 P.312 

고심 끝에 나의 선택은 ‘계속 읽자’였고, 처음만큼의 집중력을 쏟진 못한 채 빠르게 읽어내려 갔다. 사실 집중해서 읽기엔 헬렌의 ‘유별난’ 행동과 취미와 과거의 사랑 행적들이 유별나다 못해 머리가 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나는 분명 ‘위생적이고, 잘 가꾸어진 무균 인간들’이라는 헬렌식 경멸 기준에 매우 부합하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밉든 곱든 이 아이의 거침없이 쏟아지는 생각은 나름 논리정연하고, 깊게 파고드는 심오한 관찰의 세계는 신통방통하다. 중반부를 향해 달릴수록 욱하는 순간은 있지만 한 순간 그냥 덮어버리기엔 더없이 찜찜하고 아쉽기까지 하다. 이게 바로 ‘친절한’ 헬렌의 매력이란 말인가. 

위생적인 인간들을 향한 거침없는 독설. 그에 대한 분노의 향연은 그들에게 이상해 보일만한 행동과 삶을 즐기는 그녀의 ‘유별난’ 인생 이야기로 계속된다. 불임 수술을 했던 병원에 항문 질환으로 입원하게 된 그 순간부터 퇴원하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항문의 울부짖을 아픔을 진통제로 견뎌야 하면서도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스스로 덧내면서까지, 그녀를 겁나고 외롭고 아프게 하는 건 무엇일까. 불쑥 한 번씩 고개를 내미는 그녀의 불행한 가정사는 그녀에게 과연 어떤 삶을 안겨준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녀의 유별난 행동과 악취미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거부감이 아닌, 그런 그녀의 행동의 진실성 및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마구 떠오른다. 도저히 내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을 향해 달릴수록 내 머리 속에 넘쳐나는 의문들이 그녀의 거침없는 이야기 속에 하나하나 풀려나가고, 어느 상황에서건 너무나도 솔직하고 털털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어느새 인가 매우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나쁜 가족과의 이별. 병원과의 이별. 처음부터 쭉 좋아했지만 시치미 뚝 떼고 있었던 그녀의 새로운 사랑. 그리고 시작. ‘그녀답다’라는 말과 함께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도달한다. 책을 덮고서도 난 여전히 그녀의 ‘유별남’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는 자체, 그 모든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것만큼은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걸 다 따지고 보자면 이건 읽는 사람 각자에게 있어 ‘시간 때우기도 아까운 부질없는 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그 여운은 한동안 기분 나쁘게 남다 못해 읽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는 정성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다수가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 놀라우리만치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자신에게 주었던 나쁜 아픔에 이별을 고하고 당당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나가는 당찬 소녀, 헬렌 메멜. 그녀만의 ‘유별난’ 매력을 믿고 이 한 권은 충분히 극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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