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가르침
셔윈 B. 눌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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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예일대 의대 교수 셔윈 B. 눌랜드는 [How We Die]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미 1988년 [Doctors]란 책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눌랜드 교수는 [How We Die]로 1994년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미국의 뛰어난 작가로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는 10년이나 늦게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소개되었다. 2001년 TED 강연에 선 눌랜드는 지면을 넘어 온라인 세상에서도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눌랜드를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나는 책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학식과 인간성에 매료되어 TED 강연 등 온라인 세상의 그의 흔적을 얼른 찾아보고 싶어진다. 아쉽게도 이제 우리는 그의 새 책과 강연을 만날 수 없다.

이 책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다양한 질환(사고사)과 인간사의 고비(과정)를 담고 있다. 많이들 어릴 때 접하는 슈바이처 위인전의 영향 등으로 의사들의 남다른 품성이 존경스럽다. 눌랜드 교수 또한 박학다식한 의료전문인의 모습은 기본으로 한 인간적인 모습이 책 곳곳에 드러난다. 어릴 적 어머니를 일찍 여읜 가정사를 덤덤하게 독자에게 밝히고, 어머니 자리를 대신한 외조모, 이모의 보살핌 아래서 성장한 가족사와 그분들의 병력, 죽음 등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형 하비의 말년의 모습을 의사이자 가족으로서 감내한 고통과 슬픔에는 독자도 그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곧 1주기가 다가오는 내 어머니 기일을 앞두고, 의사이기에 앞서 형을 사랑하는 동생 눌랜드의 절절한 마음에 더 공감하게 된다. 그는 고백한다. 삶의 의지가 강한 형의 말 없는 눈길을 외면할 수 없어서 의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오판으로 형의 마지막 시간을 더 고통스럽게 했음을 자책한다. 가능성 낮은 사실 앞에서 우리는 희망을 꿈꾼다. 특히 기적을 바라며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며 각자 선택에 맞춰 마지막의 시간을 보낸다. 의사로서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도전이 환자를 소외시키기도 한다는 눌랜드 교수의 확언은 특히 묘한 느낌을 준다. 단순히 질환이 사람을 마지막에 어떻게 지배하고 생을 끝맺는지에 대한 의술적인 설명을 넘어 그가 임상의로서 무수히 지켜 본 환우들의 교류와 관찰 등이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어렵고 무미건조할 수 있는 내용의 책에 온기가 담겨 있다. 

어여쁜 아가의 돌 잔치보다 지인의 장례식에 더 발길이 잦아지는 생의 주기를 보내고 있다지만, 나는 성향상 죽음과 관련된 독서를 즐긴다. 이 책은 그간 읽은 책과는 다른 결의 자연과학서 같은 책이다. 그 어떤 잔혹물보다 더 잔혹할 정도로 세균, 바이러스, 난치 질환과 싸우는 우리 “몸”에 대한 설명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대개 우리는 어떤 병명은 알지만 그 투병의 험난한 과정은 모른다. 몇 해전 영국 록커 프레디 머큐리의 영화로 우리는 그가 AIDS의 발병을 알아채고 투병하는 영화 속 몇몇 장면으로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영화(우리의 인식) 밖 질환은 아주 구체적이다. 눌랜드 교수는 AIDS 환우 이스마엘(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는 뜻인데 이름과 달리 고통에 응답하는 여화와는 만나지 못했다)의 일화를 소개하며 AIDS의 간략한 역사와 우리 몸을 어떻게 공격하고 이스마엘을 굴복하는지, 즉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생의 마지막은 금기시하는 우리가 이런 책으로 죽음을 덜 회피하며 예행 연습하면 어떨까 싶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 사니 “메멘토 모리”가 체화되는 요즘이다. 21세기의 의료 기술의 선전을 기대하지만 눌랜드 교수의 의술, 의사에 대한 생각은 요즘 코비드 시국을 좀 더 겸손하게 지낼 수 있는 힘을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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