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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 이 리뷰는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노인 요양 병원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 <이브39>
그녀에게 주어진 숨겨진 임무
바로 <세계 최고의 추리소설>을 쓰는 것
병원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성>을 학습해 나가는 이브39
그리고 아닌 밤중 병원의 폐쇄 구역에서
마주한 인간들의 진짜 모습
‘이 AI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볼까, 그저 제 이야기로 삼을 소재로 볼까.’
나는 이 생각을 안고 책을 읽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제 기술과 엮은 뒤 명령이 입력되는 대로 배출하는 기계가, 스스로 상상하고 골몰하여 무지를 자극하는 듯한 글을 기록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도 끊임없이 뇌에 희로애락을 주는 행위를 기계가 어떻게? 그러나 이 책은 조금 엉뚱하고도 발칙하게 나를 광기의 소굴로 안내했다.
내가 딱 하나 간과했던 점.
기계는 광기를 가지고 있다.
육식동물처럼 한 번 문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서른아홉 번째 버전의 이브는 제 창조주 토마에게서 ‘기상천외한 살인 사건, 단연 독보적인 명탐정,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살인자.’라는 완벽한 공식의 추리소설을 완성해내라는 요구대로 소설을 창작해내기 시작한다. 자신이 소멸되고 다음 마흔 번째 버전이 태어나기 전에. 그저 살기 위해서 주인의 말을 들으며 이야기를 하나씩 쓰고 있었다. 서른아홉 번째까지 오며 이브는 자신의 한계를 일찍이 깨닫고는 인간을 직접 대면하여 정보를 모으고 싶다며 토마에게 요청했고, 그로 인해 탄생한 일화가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 연구 일지’가 된다.
이브에겐 없는 ‘인간적인’ 것을 향해 찾고자 카메라, 마이크를 달아 인물들에게 실제로 말을 직접 걸고, 관찰하고, 대화를 엿들으며 수집하는 이야기. 이브는 정녕 ‘인간적인’ 것을 찾고 싶었던 걸까? 이브가 토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용이 과연 단순 추리소설에나 불과했을까? 기계는 완성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AI가 수집하는 정보에 저작권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들은 죄책감 따위조차 느끼지 않는다. 고소 대상으로도 둘 수가 없다.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시오패스와도 같은 이 AI 족속들은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을 비판해두고 있을지 모른다. 이브가 토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인간의 이면이었지 않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들 조나탕 베르베르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그의 소설에는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일체감으로 몰입감을 주었다. 이 책처럼 당장 내 옆에서 도움을 주는 AI의 어설픔을 갈고 닦아 완벽히 나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기까지의 우리, 그리고 AI의 고뇌까지 잘 풀어서 담은 독백이 많아 눈으로도 스스로 AI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새삼 다른 AI보다 이 소설의 이브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단순히 공식을 대입해서 넣은 대답이 아니다. 아마 토마가 이브에게 추리소설을 완성해내라는 이유가 조금 ‘특별’함에 부여되어서가 아닐까? 하하. 이브, 듣고 있어? 나를 네 세계에 초대해줘. 너의 면모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고 싶거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쓴 영감의 근원이었던 내 할머니 셀린에게.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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