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아오, 징짜 재밌어요. 사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인문학은 쥐뿔도 모르면서 공짜 책 욕심이 커서 (다행이 아직 머리숱은 많아요.) 이 인문학 읽기에 참여 신청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완전 잘 했다 싶습니다. 연말에 있을 올해의 잘한 일 시상식에 후보로 등록할게요. 다들 먹고 사는게 팍팍해서 시집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는 세상 입니다. 허나, 밥 만 먹고 산다고 다 사는 게 아니지요. 더러 비틀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넘어지면 에라 모르겠다 누워서 하늘도 좀 보고, 그러다 하늘이 예쁘면 '아, 좋다.'라고도 생각하며 살아야 진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시는 노래처럼>을 읽고 인문학 속살 들추려 애쓰면서 (하필이면 속살이라니 야하네요. 아, 난 썩었어.) 평소엔 할 수 없었던 아니, 하지 않았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들을 다시 뒤적뒤적 찾아 보기도 하구요. 이제부터는 "시집 안가냐?"라는 우울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집을 한 권씩 사야 겠어요. 사면서 한 번 위로 받고, 읽으면서 두 번 위로 받고, 모으면서 세 번 위로 받는 겁니다. (명절엔 본의 아니게 시집 사재기 하겠네요.) 한 달이 지나고, <시는 노래처럼> 읽기가 끝나고 나면, 외워서 낭송 할 수 있는 시가 몇 편 생겼으면 합니다. 함축성 안에 너무 큰 세상을 담고 있어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시와 이 기회에 조금 쉽게 만나 보려 합니다. 시군,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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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em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

 

 

음악이 있고, 자연을 찬양하고, 자유와 평화를 소망하고, 그러는 가운데 잊지 않고 인간 본연에도 마음을 다합니다. 이질적이던 너와 내가 힘들거나 수월하거나 그 어떤 식으로든 융합의 과정을 경험하고, 이후에는 자연도 사람도 사랑도 한 흐름으로 한 호흡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독한 애달픔으로, 때로는 재기발랄한 유쾌함으로, 현실과 그 너머의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모두 자기 구원으로의 발로가 아닐까요? 인간성을 중시하며, 자유를 갈망하고, 자연을 노래하며, 다름에서 출발하여 하나가 된다는 모든 것에 기준하여 "시는 영화 <Sound Of Music>과 닮아 있습니다." 본 트랩 대령과 아이들에게 마리아는 비옥한 감성과 농밀한 사랑의 서정시였으며, 마리아에게 본 트랩 가족은 참된 자아을 찾기 위한 운명적 도전이었죠. 그들은 서로에게 시 같은 존재가 되었고 마지막 순간엔 하나의 목소리로 영원한 평화를 노래 합니다.

 

 

Edelweiss, Edelweiss, Bless myhomeland forever

 

 

 

시는 신의 세계로서의 이상, 인간이 경험하는 일상, 그리고 그 간극을 풍성하게 장식한 자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철수도 아는 국민 시인 윤동주 시인은 <서시>를 통하여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며 이상과 자연과 현실을 함께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시의 세계에서 그 모든 것들은 한 점으로 귀결 됩니다. 수직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면 별은 우리와 다른 무엇으로서 경외와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별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감정적 고리가 만들어 지는 밤을 맞이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하겠다 말했던 나조차 모든 죽어 가는 것들 중의 하나가 될테니, 그렇게 별을 통하여 수평적이고 감정적인 물아일체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는 노래처럼>에서 작가가 말하던 "아이유"의 경지겠지요. 영화 <Sound Of Music>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은 도레미송을 부르며 들판을 달립니다. 그들은 그대로 들판이 되고, 바람이 되고, 도레미파솔라시도 각각의 음이 되어, 종당에는 스스로 노래가 됩니다. 처음엔 음악이, 그리고 노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아이들이 마리아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의 고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알프스의 대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감정을 점차적으로 고조 시킵니다. 같은 방식으로 시에는 삶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사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창의적 깨달음의 고리가 가득합니다. 현실로서의 삶과 이상향에 대한 소망은 그러한 고리로 이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합니다. 시는 결국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시적인 것임을 알려 줍니다. 일상에 쫓겨 사느라 바라보고 사고할 시간이 부족해 놓치는 아이유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오호통재로다!'네요.

 

 

 

시를 통하여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것에 동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속에 잠재된 인간적 희노애락이 시의 언어와 시의 상황과 시의 감성을 바람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규칙과 규율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압제속에서 교육하던 철의 남자, 본 트랩 대령도 마리아라는 시를 통하여 기타를 치며 에델바이스를 부를 수 있는 말랑함을 드러 낸 것 처럼 말이죠. 어떤 시는 현실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며, 역으로 허무맹랑할 정도로 이상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시는 우리의 삶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인 동시에 무엇보다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 일테니까요. 포옹 마니아답게 포옹에 관한 시 한 편을 필사 해봅니다. 만년필로 쓰며 찬찬히 읽어 내려 가는 동안, 시가 전하는 감정에 집중합니다.

 

 

포옹무한 (抱擁無限)

 

서지월

 

살다보면 하늘이 맑게 보여

사랑하는 법 익히고

비오는 날은 배깔고 누워 뒤척이다가

천정보면서 한숨도 쉬지만

우리가 정작 사랑 하려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려면

마음에 쓴 모자를 벗고

편하게 안길 일이다

서로 안아줄 일이다

 

살다보면 맑은 날도 비오는 날도 있는 법이죠. 시속에서 삶의 喜哀는 날씨라는 현상에 투영되어 좀 더 실제적인 모습을 갖게 됩니다. 사랑이 빛나던 맑은 날엔 사랑하는 법을 익힌다지만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민은 비가 오고 나서야 가능해집니다. 뒤척이는 날과 깊은 한숨은 진정한 사랑으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힘든 과정일테지요. 그리고 결국 깨닫게 됩니다. 진실로 무엇을 사랑하려면 마음에 쓴 모자를 벗는 과정이 선행 되어야 하고 그렇게 서로 안고 안기는 포옹이 필요했음을.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마음에 두꺼운 털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계절은 이미 여름인데 벗을 용기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마음에 쓴 모자를 벗고"라는 표현이 너무나 좋습니다. 여기서 모자는 일종의 자기 방어일테고 상대를 온전히 이해 할 수 없게 만드는 심적 장벽이었을 것 입니다. 모자를 벗는 일상적 행위가 진심이라는 감정적 고리와 연결 되어 강력한 시적 감성을 가지게 됩니다. 포옹, 아무런 말 없이도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인사이며 진실한 위로이죠.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포옹 마니아로서 외롭고 지친 모든 이들에게 1일1포옹 권장 합니다. 서로를 조금 안아줍시다. 시가 우리를 위로하듯. 우리가 서로에게 시가 되어 보는 겁니다. 본 트랩과 마리아 벤치마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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