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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살고 싶다 - 김경주의 인간극장
김경주 지음, 신준익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4월
평점 :
틈은 균열이다. 균열은 상처다. 원래의 상태가 아닌, 어떠한 이유로 갈라져 터져버린 것이다. 그는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생긴 틈을 메우려 애쓰며 살아간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늘도 이 힘겨운 세상에서 잘 살아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틈은 기회다. 깨질 수 없을 것만 같이 단단한 것도 깨질 수 있다는 희망.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일상이 깨지면 변화가 생긴다. 그는 당황스럽지만 반가운 것이기도 하다. 그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이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늘을 날던 이를 추락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땅을 걷던 이를 땅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변화는 변화다.
서른일곱명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곳이 완전히 어두운 곳만은 아니다. 그들은 어두운 와중에 선연하게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본다. 그늘을 좇아 고개를 들면 그늘을 만들어낸 빛이 있다. 그들을 빛을 보며 살아가는 어두운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자신보다 불행할 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 보다 불행한 이들이 있다는 동정심을 버리지 못하는 서른일곱명은 세상에 각자의 틈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부끄러울 그 균열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 다른 틈을 찾는다. 숨 한번 몰아쉴 틈 없는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잠시 쉬어갈 휴식을. 완전히 불행하지는 않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이들은 변화를 꿈꾼다. 오늘 하루 버티면 이 균열이 조금은 메워지겠지. 잠깐 휴식도 취하며 버텨보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틈 일거야.
틈이 메워지길 바라지만 막상 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시인 김경주다. 이들을 그려낸 것은 화가 신준익이다. 그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솔직하고 싶어서였을까. 저자들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틈을 주며 다른 사람들을 그 틈으로 데려간다.
나는 감히 그 균열을 어루만질 수도 없었고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어설픈 동정 또한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간신히 버틴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그저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된다. 이 세상에 당신만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사연 없는 삶이 없다는 것만 알아도 세상은 좀 더 메워질 수 있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개츠비 틈 속에 살며 틈만 나면 살고 싶다고 외쳤던 인간이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S.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