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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 이민혜 그림 에세이
이민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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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 도깨비만은 아니다. 엄마도 그렇다. 엄마가 늘 곁에 있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알게 된다. 엄마의 기쁨, 슬픔, 눈물, 미소의 흔적은 바로 나다. 딸은 엄마의 흔적으로 자란다.

성석제, 공지영 작가 책의 삽화를 그린 이민혜 일러스트레이터가 처음으로 자신의 책을 내면서 선택한 이야기는 엄마의 가장 진한 흔적, 딸의 이야기다. 엄마가 될 것이지만 영원히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이야기를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담아냈다.

때로는 열 마디의 말보다도 하나의 그림이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이민혜 작가는 엄마의 기나긴 시간을 그려냈다. 1부는 딸과 엄마의 이야기, 2부는 결혼을 한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딸은 조금씩 변해가지만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점점 공허해지는 헛헛한 마음에 가족들을 우겨 넣으며 시간을 메운다. 그 사이에 엄마는 조금씩 늙어가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청개구리다. 딸은 엄마를 벗어나려 애쓰다가 그런 자신마저 품어주는 엄마의 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 시간들을 사랑스러운 그림들은 담담하게 전한다.

엄마의 전화는 걸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쁜데 굳이 전화를 해서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을 한다며 귀찮아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찾는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아무 쓸모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것이 엄마와 딸이니까.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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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땅 서던 리치 시리즈 1
제프 밴더미어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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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다가 무섭다.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랐으면서도 그렇다. 내게 가장 아름다운 것 역시 바다였다. 나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갈증을 느꼈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는 숨이 막혔다. 바다는 내게 평온이면서 공포였다. 떠날 수 없는 곳이면서 도망치고 싶은 곳이었다. ‘유령새’에게 X구역이 그랬듯이.

   「서던 리치 1권: 소멸의 땅」은 강렬한 표지부터 눈에 띈다. 기괴한 식물이 우거져 있는데, 그를 감싸 안듯 노란 테이프가 X자로 쳐져있다. 노란 테이프는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호기심을 유발했다. 나는 표지를 넘겼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미지의 구역으로 통제된 X구역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X구역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탐사대를 보낸다. 열두 번째 탐사대의 일원인 주인공은 생물학자다. 그와 함께 심리학자, 측량사, 인류학자가 길을 떠났는데 모든 인원은 여자였다. 그들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모두들 그것에 정확한 명칭을 붙이지 못하지만 생물학자는 그것이 ‘탑’이라고 생각한다.

   탑은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어째서 생물학자는 그렇게 확신했던 걸까. 탑을 탐사하다가 생물학자는 유기체로 이루어진 글자를 발견하고 그 포자에 감염된다. 빛이 생물학자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생물학자는 어둠의 장막을 빗겨낸 진실을 발견한다.

   거칠게 내용을 요약하면서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곳곳에 스며있는 끝없이 새카만 어둠과 그럼에도 따스한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단어들이 생명력이 부족한 것 같았다. ‘생물학자’라는 단어 때문일까. 그에게서 ‘유령새’를 끌어내면 조금 달라질까.

   유령새가 X구역으로 오기 전, 열한 번째 탐사대에 유령새의 남편이 있었다. 그는 X구역에서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유령새는 남편을 잃었다. 다만 그가 죽었냐고 묻는다면 유령새는 망설일 것이다.

   유령새가 X구역에 온 이유가 남편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길을 잃었을 때, 유령새를 인도한 것은 남편이 유령새를 위해 남겨놓은 일지들이었다. X구역에서 오로지 남편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유령새는 X구역 곳곳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을 느꼈는데 기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것이 또 다른 진실임을 직감하고 유령새는 용기를 낸다.

   

   소멸의 땅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삼키는 곳이다. 유령새 역시 그 땅에 삼켜질지 살아남아 진실을 직시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어둠을 품은 땅에서 빛을 발하는 유령새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유령새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유령새는 생물학자다. 그가 생물학자이기 때문에 X구역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유령새이기에 그 땅에 남은 흔적과 존재들의 시선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소멸의 땅을 벗어나 경계 기관을 넘어서 빛의 제국까지, 유령새는 깨지 않는 꿈을 걸어갈 것이다. 그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려 한다. 유령새는 빛을 발하고 있고, 나는 그 꺼지지 않는 빛을 향해 계속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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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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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업시간,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사를 배우면서 이름이나마 간신히 언급되었던 여성은 유관순뿐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열사로 불리는 일은 드물었다. 기미년 3·1운동에서 태극기를 흔든 ‘누나’정도로나 슬쩍 언급되고 사라졌다. TV에서 한 역사 선생이 그는 ‘누나’가 아니라 ‘열사’였다고 이야기하자 그것이 연일 뉴스거리가 되었고, 모두의 무지를 탓하는 각성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이 그 역할을 모두 인정받게 된 것은 아니었다. 독립운동을 한 이들에 대한 재평가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성들은 지워져 있었다.

역사 속의 여성들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나조차도 당연히 독립운동은 남자들만 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많은 인물들은 전부 남자였고 간간히 여성들의 활동도 있었다더라고 만 배웠기 때문이다. 역사는 여성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세 여자」는 그런 여성들을 기억한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 대신 <사서삼경>을 읽은 모양이야.”

 

박헌형과 김단야, 임원근, 송봉우의 부인이라는 표현만으로 그들을 표현할 수는 없다. 허정숙과 주세죽, 고명자는 신여성이자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가였으며 독립운동가로 자신만의 생을 살았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져야했던 이유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리에서 밀어냈던 이들 때문이다. 긴 머리를 자르면서 그들이 잘라냈던 편안한 삶의 무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안정된 삶을 살기를 거부했다. 조국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목표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철저한 사상가이며 꿈을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 여자」는 그들의 섬세한 감정과 원대한 꿈을 따라간다. 때로는 아이들의 어머니이면서 조국의 투사였던 그들은 번민하면서도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깥이 춥다고 껍질 속으로 도로 들어가겠니?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인생은 생각도 하기 싫어.”

 

독립운동이후,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공산주의자였던 세 여자의 삶은 더 잊혔다. 고명자도, 주세죽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허정숙은 좀 더 오래 살았지만 그 역시 꿈을 가슴에만 품은 채 떠나야했다. 이제야 그들의 이름은 먼지를 털어내고 세상에 돌아오고 있다. 「세 여자」의 양이 적지 않지만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유다.

페미니즘이 각광받으며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처절했지만 봄날처럼 향기로웠던 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볼 기회로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혀 살아냈던 이들의 찬란한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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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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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업시간,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사를 배우면서 이름이나마 간신히 언급되었던 여성은 유관순뿐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열사로 불리는 일은 드물었다. 기미년 3·1운동에서 태극기를 흔든 ‘누나’정도로나 슬쩍 언급되고 사라졌다. TV에서 한 역사 선생이 그는 ‘누나’가 아니라 ‘열사’였다고 이야기하자 그것이 연일 뉴스거리가 되었고, 모두의 무지를 탓하는 각성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이 그 역할을 모두 인정받게 된 것은 아니었다. 독립운동을 한 이들에 대한 재평가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성들은 지워져 있었다.

역사 속의 여성들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나조차도 당연히 독립운동은 남자들만 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많은 인물들은 전부 남자였고 간간히 여성들의 활동도 있었다더라고 만 배웠기 때문이다. 역사는 여성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세 여자」는 그런 여성들을 기억한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 대신 <사서삼경>을 읽은 모양이야.”

 

박헌형과 김단야, 임원근, 송봉우의 부인이라는 표현만으로 그들을 표현할 수는 없다. 허정숙과 주세죽, 고명자는 신여성이자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가였으며 독립운동가로 자신만의 생을 살았다.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져야했던 이유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리에서 밀어냈던 이들 때문이다. 긴 머리를 자르면서 그들이 잘라냈던 편안한 삶의 무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안정된 삶을 살기를 거부했다. 조국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목표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철저한 사상가이며 꿈을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 여자」는 그들의 섬세한 감정과 원대한 꿈을 따라간다. 때로는 아이들의 어머니이면서 조국의 투사였던 그들은 번민하면서도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깥이 춥다고 껍질 속으로 도로 들어가겠니?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인생은 생각도 하기 싫어.”

 

독립운동이후,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공산주의자였던 세 여자의 삶은 더 잊혔다. 고명자도, 주세죽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허정숙은 좀 더 오래 살았지만 그 역시 꿈을 가슴에만 품은 채 떠나야했다. 이제야 그들의 이름은 먼지를 털어내고 세상에 돌아오고 있다. 「세 여자」의 양이 적지 않지만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유다.

페미니즘이 각광받으며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처절했지만 봄날처럼 향기로웠던 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볼 기회로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혀 살아냈던 이들의 찬란한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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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살고 싶다 - 김경주의 인간극장
김경주 지음, 신준익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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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틈은 균열이다. 균열은 상처다. 원래의 상태가 아닌, 어떠한 이유로 갈라져 터져버린 것이다. 그는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생긴 틈을 메우려 애쓰며 살아간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늘도 이 힘겨운 세상에서 잘 살아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틈은 기회다. 깨질 수 없을 것만 같이 단단한 것도 깨질 수 있다는 희망.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일상이 깨지면 변화가 생긴다. 그는 당황스럽지만 반가운 것이기도 하다. 그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이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늘을 날던 이를 추락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땅을 걷던 이를 땅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변화는 변화다.

   서른일곱명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곳이 완전히 어두운 곳만은 아니다. 그들은 어두운 와중에 선연하게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본다. 그늘을 좇아 고개를 들면 그늘을 만들어낸 빛이 있다. 그들을 빛을 보며 살아가는 어두운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자신보다 불행할 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 보다 불행한 이들이 있다는 동정심을 버리지 못하는 서른일곱명은 세상에 각자의 틈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부끄러울 그 균열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 다른 틈을 찾는다. 숨 한번 몰아쉴 틈 없는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잠시 쉬어갈 휴식을. 완전히 불행하지는 않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이들은 변화를 꿈꾼다. 오늘 하루 버티면 이 균열이 조금은 메워지겠지. 잠깐 휴식도 취하며 버텨보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틈 일거야.

   틈이 메워지길 바라지만 막상 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시인 김경주다. 이들을 그려낸 것은 화가 신준익이다. 그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솔직하고 싶어서였을까. 저자들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틈을 주며 다른 사람들을 그 틈으로 데려간다.

   나는 감히 그 균열을 어루만질 수도 없었고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어설픈 동정 또한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간신히 버틴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그저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된다. 이 세상에 당신만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사연 없는 삶이 없다는 것만 알아도 세상은 좀 더 메워질 수 있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개츠비 틈 속에 살며 틈만 나면 살고 싶다고 외쳤던 인간이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S.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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