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단편집 바벨의 도서관 29
훌리오 코르타사르 외 지음, 조구호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보르헤스가 기획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하나. <아르헨티나 단편집>. 이 시리즈는 표지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눈이 간다. 그리고 좀 독특한 구성이라 마음에 든다.

 

  <아르헨티나 단편집>은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이야기들은 제각각이면서도 책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만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분위기가 적당히 어둡다는 것과 '환상(현실에서는 보통 일어나지 않는 현상들)'이 글에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건 판타지와 SF보다는 좀 다른 느낌인데, 어디까지나 현실의 이야기를 하려고 잠깐 현실이 아닌 것을 끌어와서 붙였다는 느낌이다.

 

  '이수르',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 '물건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선택받은 자'는 재미있었고, '운명은 어리석다',' 점거당한 집'은 별 감흥이 없었다. '역마차', '체스선생'은 보통이었다.

 

-----------------------------

 

* 이수르  -레오폴도 루고네스-

 

  원숭이가 말을 잊어버린 인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원숭이 이수르에게 차근차근 조음을 가르치는 '나'의 이야기.

 

p.19. 

그 때 나는, 자바 원주민들은 자바 원숭이들이 사람처럼 조음을 하지 않는 이유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읽고 있었는데, 그게 어디에 실려 있었는지는 지금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자바 원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일을 시킬까봐 사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발상도 발상이지만,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가 좋았다. 글은 '나'의 실험일지이며 회고록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전체적으로 딱딱한 어조인데도 글 안에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 화자는 미친 것 같기도 하고, 냉정한 과학자 같기도 하고, 광신도 같기도 하다. 사람이 하나에 맹목적이 되면 그렇게 보이게 되는 걸까. 화자에 비해 이수르는 안개 낀 듯 상당히 모호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건 화자의 시선을 통해 이수르의 모습이 드러나는데다가 그가 말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수르는 진짜 말을 한 걸까? 읽을 때마다 이수르가 말한 것 같기도 하고 화자가 꿈을 꾼 것 같기도 한데, 그 명확하지 않은 점이 이 글의 매력인 것 같다.

 

 

*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  -아돌프 비오이 카사레스-

 

  p.41.

  사건은 모든 사람이 결부된 것은 아닌 두 가지 상황 때문에 알려졌다. 내가 말하는 두 가지 상황이란 책을 주문한 것과 살수기를 철거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위와 같은 두 가지 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돈 후안 카마르고의 대자 돈 타테이토를 스파이로 보낸다. 시골마을에서 심심한 사람들이 '조금 별난 상황'을 가지고 시시덕거리는, 유쾌한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은데, 돈 후안이 책을 주문하고 살수기를 철거한 이유 때문이다.

 

  만약 어떤 외계인이 이 세계의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해서 "해방자"로 나타났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외계인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제거해야 하는가?

 

p.64.

   "나는 우리의 호기심이 부족한 것을 저주해." 그러고서 하늘의 별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는 오늘 밤 수많은 아메리카와 무한하게 넓은 새로운 땅들을 잃어버렸어."

  "돈 후안은 유한한 인간의 법칙에 따라 살기를 원했어. 나는 그의 용기에 감탄하고 있어. 우리 두 사람은 이곳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잖아."

  내가 말했다.

  "이젠 늦었어."

  "이젠 늦었어." 그가 따라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건 사실 쓸데없는 게, 그들이 우왕좌왕하기 전에 기실 사건은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돈 후안은 살수차를 지하실에서 빼내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돈 후안이 결정을 내리기 전이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면 이 가벼운 소동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약간의 씁쓸함을 안고 다가온다.

 

  그건 그렇고 제목이 왜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속담인가?

 

 

* 운명은 어리석다  -아르투로 칸셀라 / 필라르 데 루사레타-

 

  간단히 말하자면, 후안 페드로 레아르테라는 궤도마차회사 소속 마부인 크리오요 노인이 어떻게 30년을 뛰어넘어 왼쪽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간에 맥락을 놓쳐서 다시 한 번 읽어야 했다.

 

p. 94.

"그러니까 운명은 미국인들처럼 교활하고 어리석다는 거지요.... 내가 마차에 탄 뒤부터 운명을 신이 결정해주셨기 때문에 내 왼쪽다리가 부러져 버린 거예요. 이미 30년 전에 부러졌어야 했지만, 기적같이 무사했지요. 90년대에 혁명이 발발한 첫째 날 라바예와 파라나에서 총알 세 발이 내 무릎 높이의 플랫폼을 관통했는데, 총알은 내 바지를 스치듯 살짝 비켜갔어요. 나중에 내가 이륜마차와 부딪혔을 때 운명이 착각을 하고서 내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려버린 거예요. 그리고 현재, 운명은 내가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런 함정을 파놓은 거지요. 운명은 진짜 악마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좀 어리둥절하다. 결말이 급작스런 느낌도 있고.......

 

 

* 점거당한 집  -훌리오 코르타사르-

 

  대대로 살아온 커다란 집에서 사촌누이와 살던 화자. 어느 날 집의 한쪽 날개를 누군가 점거했다는 걸 알아내고 복도를 폐쇄한다. 화자는 사촌누이와 집의 다른쪽에서 삶을 이어가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본채마저 점거당한다. 그는 집을 잠그고 열쇠를 버린 뒤 사촌누이와 떠난다.

 

  꽤 묘한 글이다. 집을 점거한 건 무엇이었는지, 그는 왜 기척이 들리자마자 도망쳤는지, 한 번 큰 소리 내보지도 않고 집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들'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지만, 사실 그들의 정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중요해보이는 것을 포기하면서도 일상은 이어진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역마차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

 

  역마차에 탄 나이든 숙녀 카탈리나를 묘사한 짧은 글. 카탈리나의 성격과 심리를 주촉으로 역마차의 풍경을 묘사한다. 카탈리나가 역마차에서 자신과 같은 차림의 여성을 발견하고, 그 여성이 이 역마차에 탈 기회가 있었는가 의심한 순간 바퀴축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잠시 후 다친 카탈리나 대신 의문의 여성을 태운 채 역마차가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마치 범죄소설이나 괴담처럼 느껴진다. 묘사가 잘 되어있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줄거리라서 인상에 깊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 물건들  -실비나 오캄포-

 

  카밀라 에르스키가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갑자기 그녀에게 나타나며 벌어진 이야기. 짧고 간략하며 별다른 얘기는 없는데 은근히 기괴한 느낌이 든다. 물건들이 돌아왔다는 서술 이후, 그녀의 가족(남편과 아이들)의 묘사가 사라진다. 어떤 수단으로 물건들이 돌아왔으며, 가족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p.130.

  카밀라 에르스키는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버렸다.

 

  이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물건들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녀가 무슨 수단으로 물건들을 구한 건지,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가 왜 지옥에 갔는지). 그래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구체성이 결여가 환상적 기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편이다.

 

  다만 쉽게 생각해보자면, 물질에 대한 탐닉을 경고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애초에 카밀라 에르스키는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그다지 마음에 두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카밀라가 물건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일어난다. 일단 나는 이렇게 해석했지만 이 글도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글을 읽을 때에는 그냥 어리둥절한 느낌이 강했다. 좀 곱씹어봐야 재미가 느껴지는 소설인 듯하다.

 

 

* 체스 선생  -페데리코 펠체르-

 

  탈무드나 이솝우화 같은 느낌. 구체적 배경보다 보편적인 어떤 교훈을 에둘러 말해주는 듯 하다.

 

p.135.

"절묘하군요." 제자가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는데요. 졌군요......."

"그렇죠. 겉으로 보기에는." 선생이 지적했다.

남자는 이제 체념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과신은 나쁘죠. 그렇지 않나요? 이게 바로 마지막 강의군요....... 선생님 이름이 뭐라 하셨던가요?"

"신입니다."

 

 

*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마누엘 페이로우-

 

  어느날 거리를 걷다 어떤 남자를 차례로 세 번 마주친 화자. 한날 잠깐 사이 본 건데도 남자의 옷차림은 각기 다르다. 그 때부터 남자를 관찰한 화자는 그것이 한 남자의 과거들과 현재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는다. 화자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남자의 사무실로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그날 꿈에서 그는 남자를 본다. 그 다음날 남자의 사무실에 가지만, 남자는 원래 없었다는 설명이 돌아온다.

 

  꿈 속에서 주인공은 그 남자를 (p.151.) 그 얼굴은 내게 엄청한 해를 끼쳤으나 내가 결코 가면을 벗길 수 없었던 누구였다. 내가 항상 등만 보았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내가 그 얼굴을 보려고 다가갈 때면 상항 창을 닫고 숨어버렸다. 라고 표현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남자는 시간의 의인화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시간에 관한 우화가 될 터이다.

 

  발상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으나 끝이 다소 모호하고 난해하다. 한순간에 현실과 환상, 시간을 뒤섞은 느낌이랄까.

 

 

* 선택받은 자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를 재해석한 이야기. 성경을 알고 있다면 끝이 나오기 전에 이야기의 모티브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경이 나사로가 살아난 것까지만 적고 있는 데에 힘입어, 작가는 그 이후의 나사로를 묘사한다. 죽음에서 돌아온 나사로는 그 이후 늙지도 다치지도 않고 살아간다. 그 불로불사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p.162.

예수, 빛의 왕이여! 왜 나를 이 끔찍한 땅에 버려둔 채 변하지도 늙지도 죽지도 못하게 하는가....... 나는 당신에게 묻고 내 자신에게 묻노라. 왜, 무슨 목적으로 나, 나사로를 선택했고, 잊어버렸는가.

 

  불멸에 대한 짧고 강렬한 단상. 굉장히 깔끔하다.

 

 

----------------------------------

 

  전체적으로 좀 난해한 기미가 보이는 단편들이 많다. 하지만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단편이 섞여 있어서 읽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단 힘들다고 여기기에는 글들이 몹시 짧다.) 이전에 읽었던 글들과 스타일이 좀 달라서 재미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계속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 7.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