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가 간다
조혁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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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자체는 잘 쓰여졌다. 하지만 도통 내가 좋아하지 않는 류의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나는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점수가 낮다.
 
  나는 블랙코메디를 꽤 좋아한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웃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뒤에 있는 광고, '트로트풍 코믹 액션 러브로망'이라는 단어에 꽂혀서였다. 나는 애초에 이 책에 웃음을 기대하며 출정했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같은 사물 같은 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코메디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도통 이 책을 코메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정소모가 유독 큰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뭔가에 잔뜩 시달린 것처럼 축 늘어진다. <삼류가 간다>를 읽고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굉장한 비극, 굉장한 슬픔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은 무기력함이었다. 우울한 일상, 벗어날 수 없는 우울, 그런 것. 마치 장마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날이 갤 수는 있겠지만 내일 당장 날이 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마 말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섞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비극에 치중한 것 같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분명 웃을 만한 포인트는 곳곳에 있다. 정의를 위해서라고 잔뜩 거들먹거리지만 사실 신고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중요한 남자, 개를 죽이러 갔다가 개에게 반격당해 도망치는 사람들, 9평짜리 빌라 지하방에 가득찬 세 대의 냉장고, 화염병에 불붙일 라이터가 없어 허둥거리고 자신이 공격한 영업점 여직원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학생...... 하지만 전체적으로 글에 깔린 분위기가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같은 유머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불러오는 웃음의 정도가 다른 법. 작가는 유머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다.
 
  이 책의 태반에는 연애 얘기가 깔려있다. '달려라 자전거', '고물 냉장고' 두 편을 빼고 전부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가 연애일까. 연애는 연애인데 활활 타오르는 연애가 아니라 모진 바람에 휩쓸려 거의 다 사그라진 깜부기불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연애조차 열정 없이 흘러간다. 잔뜩 얻어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복서처럼.
 
  <삼류가 간다>를 읽고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
  장마는 끝나고 열정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201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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