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수사한다 -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확장되는 끝없는 텍스트의 공간들 패러독스 6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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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을 수사한다>로 피에르 바야르의 추리비평 3부작이 모두 국내에 소개되었다. <햄릿을 수사한다>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 이어 추리비평 시리즈 2편이지만, 국내에는 3편인 <셜록 홈즈가 틀렸다>가 먼저 소개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귀머거리들의 대화로 확장되는 끝없는 텍스트의 공간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텍스트를 두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친구와 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본 것과 친구가 본 것이 달라서 당황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한창 재미있게 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친구가 "그런 부분이 있었던가?"라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 경우 내가 없는 것을 본 것일까, 친구가 본 것을 잊은 것일까? 같은 글을 읽었는데도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가?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고 주관적인 시선이 객관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와 비슷한 문장을 어디에서 읽은 적이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귀머거리들의 대화'를 다루는 이 책은 재미있는 소재가 분명하다.
 
  피에르 바야르는 월터 윌슨 그렉과 존 도버 윌슨 사이에 <햄릿>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공반전의 시작(윌슨이 그렉의 비평을 기차 안에서 읽고 충격받는 장면)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들의 입장차는 명백하다. 그렉의 주장에 대해 윌슨은 반박한다. 같은 텍스트를 두고 어떻게 이런 대립이 일어나는 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다른 입장을 보이게 했던 햄릿의 미스터리들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에르 바야르는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을 끌어들이고, 비교하고, 분석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관점과 이론을 낳은 <햄릿>에 도사리고 있는 일관성 없는, 그래서 미스터리하게 남은 일들이 언급된다.

  * 이상한 점 *
  1.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죽일 절호의 기회에서 왜 망설이는가?
  2. 선왕의 살해장면을 재현한 무언극을 본 클로디어스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 클로디어스가 선왕의 살해범이라면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다.
  3. 오필리아를 대하는 햄릿의 태도에 대한 의문. 햄릿은 왜 오필리아를 가혹하게 대하는가?
  4. 유령이 묘사한 살인(귀에 독을 붓는 것)과 같은 방식의 살인이 벌어지는 작품을 '마침' 극단이 가지고 있다는 게 있음직한 일인가?
     -> 햄릿이 살해수법을 알고 거기서 극의 영감을 얻지는 않았나?
  5. 햄릿 이외에 유령을 직접 보고 대화를 한 사람은 없다. (경비병들이 본 것은 정확히 말해 '선왕의 유령'이 아니다.)
     -> 환각 - 유령은 실재하는가?

  
  책 속에서는 대충 이상의 다섯가지 의문점이 도드라진다. 

  피에르 바야르는 다섯 가지의 의문점을 추적하고 꿰어맞추면서 뜻밖의 범인과 맞딱뜨린다. 그런데 이게 또 어째 설득력이 있다. 이 가설을 채택하면 다섯가지의 의문점이 쏙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햄릿을 수사한다>는 햄릿의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그렉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마지막은 그렉과 또 다른 피에르 바야르의 결론에 다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틈틈이 살펴보는 것이 '귀머거리의 대화'들이고, 결론적으로 피에르 바야르는 '귀머거리들의 대화'를 부정하기 않고 포용하는 '내적 패러다임'이라는 형식에 다다른다.
 
  p.198.
  내적 패러다임은 개인적인 질문들로(그리고 이 질문들의 유기적 결합으로) 구성되는데, 이 질문들이 연구 무대에서 재연되면서 무의식적이지만 결정적인 방식으로 주된 방향을 바꿔놓는 것이다.
 
  개인이 각자의 텍스트를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서로의 논리를 자신의 논리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에 충실하자는 것이 '내적 패러다임'을 끌어들인 새로운 독서법의 요지다. 상대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해석학'의 길을 뚫어주고, 그로 인해서 오히려 텍스트와 해석이 풍부해진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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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좀 다른 이야기.
 
  나는 지금까지 국내 출간된 피에르 바야르의 책 다섯 권을 모두 읽었는데, 그 중에서 초기의 두 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는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번역자가 바뀌고 <예상 표절>,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가 나왔다. 그런데 이 세 책은 읽는데 시간도 오래걸리고 한 문장을 두어 번 읽어야 할 정도로 이해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예상 표절>자체가 복잡한 내용이니 어려워서 그렇겠지 싶었다. 그런데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갑자기 글을 재미없게 쓰게 된 걸까? <햄릿을 수사한다>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보다 먼저 작성되었으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다시 한 번, <햄릿을 수사한다>를 내용만 파악하면서 대충 읽어보았다. 글은 재미있다. 그런데 번역된 문장이 안 읽힌다. 그 때문에 조직화되지 않은 글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뭘 읽는지 모르겠으니 읽는 게 점점 고역이 된다.  

  번역 문제였다. 
  
   

 
201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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