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생활속에 스며들다
조원용 지음 / 창의체험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까이 있는 것을 의외로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까 예술에서 낯설게 하기 기법 같은 게 있는 거겠지.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주변에는 신기한 일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뭔가에 익숙해지는 것을 원망할 수도 없는 게, 주변의 모든 자극이 생소하게 느껴지면 정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뭔가에 익숙해지는 것은 뇌의 용량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집, 혹은 건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 우리는 완성품을 보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지 않는다. 아마추어가 건드리기 힘든 분야는 약간의 신비함과 다소의 무관심을 동반하는 법이다. 일례로 나는, '집 = 사는 곳, 건물 = 생활하는 곳'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는 첫 장부터 건축물에 대한 정의를 던져주며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건축물이란 밖과 분리된 내부 '공간'을 말하는 걸까, 공간을 나누고 있는 '겉 껍데기'를 가리키는 걸까?"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는, 생활 속의 건축과 건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백화점에는 왜 창문이 없는가, 은행의 천정이 높은 이유와 음악당의 천정이 구불구불한 이유 등 건축 용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천정과 천장의 차이나 베란다 발코니 테라스 팔로티의 차이 그리고 벽의 종류 같은 건축 용어 이야기, 왜 한국의 건물 수명은 20년 정도인가와 같은 원리 이야기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환경이 건축에 영향을 주고(굉장히 세심한 부분까지!), 건축이 문화에 영향을 주고(한국화는 왜 폭이 좁고 아래로 길까?), 건축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삶을 좌우하는(주부의 작업 삼각형이나 삼풍백화점붕괴 등) 모습을 차근차근 맛볼 수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는 "집=사는 곳"이라는 정의를 "집 = 삶"이라는 정의로 바꿨다. 건물이 얼마나 생활에 밀접해 있는지, 왜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 세 가지에 건물(집)이 들어가는지,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을 인용해보자면, '전문가가 전문분야에 대해서 초보자에게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초보자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감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풀어보자면, 자칫 잘못하면 듣는 이가 아는 얘기만 늘어놓게 되어 지루하고 잠깐 방심하면 너무 전문적인 얘기를 늘어놓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는 잘 만든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축 이야기는 아는 얘기만 늘어놓아 지루하지도 않고, 모르는 얘기만 들어놓아 어리둥절하지도 않다. 제목처럼, 생활 속에 스며든 건축을 생활을 들어 풀어내는 글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제일 아쉬운 것은 서술 방법이다. 뜬금없이 화제가 바뀔 때가 있고(뒤에 있는 것은 대부분 본문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저자의 경험이나 생각이다), 비문이 꽤 많이 보인다. 이것은 저자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지만, 출판사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좀 더 괜찮은 책이 됐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청소년 대상이라는 책은 아무래도 가르치려는 어조가 될 때가 있는데, 이 책도 그 함정을 모두 피해가지는 못한 것 같다. 
  
   


2011.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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