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세계였을 때
스튜어트 고든 지음, 구하원 옮김 / 까치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결코 읽고 싶어지는 책 표지가 아니다. 빨간 고딕체로 적힌 글자, 푸른 지도에 빨간 옷을 입은 사람... 요즘은 인문교양책도 참 예쁘게 나오는데, 이 책은 마치 전공서적과도 같은 삘을 풍기고 있었다. 나를 읽으면 너는 지루해서 졸게 될 거야, 라는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는 것 같은 표지의 모양에 너무 놀란 나는 이 책의 원판을 찾아보았는데, 훨씬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까치는 어째서 책의 표지 디자인을 바꾼 것일까? 책의 표지를 보고 저절로 선입견에 휩싸인 나는 두려움에 떨며 책을 펼쳤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은 없다고들 한다. 쓰는 사람의 시각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스튜어크 고든, 이름만 들어도 아시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사람이,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깊이있는 서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우였다. 스튜어크 고든은 조금은 독특한 방법을 선택했다. 아시아 사람이 서술한 기행문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그 당시의 아시아를 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는 딱딱하지 않았고, 자연스러웠으며, 재미있었다.

 

  현장, 이븐 파들란, 이븐 시나, 인탄의 난파선(인양된 난파선의 유물을 보고 당시 시대의 교류를 추측하고 있어서 다른 장 보다 좀 더 독특하다), 아브라함 빈 이주, 이븐 바투타, 마환, 바부르, 토메 피레스. 이들 중에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은 없다. 인도까지 가서 불교법전을 가지고 돌아온 현장(삼장법사)과 의술에 한 획을 그었다는 걸출한 사람 이븐 시나 정도는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마저도 역사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비껴있다. 대부분은 생소한- 그 당시에는 쌀알만큼 많았던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아마도 당시에는 평범했던 여정을 따랐을 것이다.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는 무역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지만, 상인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승려(현장), 학자(이븐 시나), 군인이자 군주(바부르), 사신(이븐 파들란)..... 그래서 각 장마다 다양한 맛이 있다. 조금씩 다른 각도로, 그 시대에 바짝 붙어서, 세심하게 아시아라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느낌이다. 

 

  내가 알던 아시아는 중국-한국-일본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를 일컬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단절된 느낌이었다.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는 뚝뚝 단절되어 있던 내 안의 '아시아'를 연결시키고 확장시켰다. 그 동안, 나는 중동 지역이 어째서 아시아라고 불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쪽은 이 쪽과 종교도 관습도 사람도 환경도 너무 다른 것 같았다.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가 보여주는 것은, 아시아가 이렇게 잘 짜여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나 같은 것을 공유하고(선물을 바치고 예복을 하사하는 관습 등),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순조롭게 교류가 이루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것이, 나는 굉장히 신기해보였고, 아시아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증거로 보였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라 불리는 지역에 넓게 퍼져 있던 거대한 문화적 네트워크인 것 같다. 이 네트워크는 상당히 점조직과 비슷해서, 피라미드식의 조직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조직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느슨해 보이는 이 네트워크는 상당히 강했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유대감과 친숙함이라는 것을 만들어주었다. 


  <아시아가 세계였을 때>는 지루하기는 커녕 흥미진진했으며, 색다르고, 새로운 '아시아'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쉬운 것이라면 극악한 센스를 자랑하는 표지와(정말이지 이 표지는 참 수상해 보인다), 책의 정확히 중간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이라 하겠다. 굳이 '왕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서 메카/8장에 걸쳐 수록된 사진사진사진사진/와 델리를 정기적으로 여행했다'라는 식으로 글을 끊어먹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 장이 끝나고 넣어도 됐을 텐데. 이러한 디자인적인 아쉬움을 빼고는 정말 좋은 책이다. 정말 디자인만 아니면, 완벽하다.


2010.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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