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들지 않고 용기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의 딸의 인생을 바꾸는 50가지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성교육' 이라는 단어는 이런저런 기억을 불러오는데, 대부분 딱히 좋은 기억은 아니다. 초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왔던 외부 강사는 게이를 '남자가 좋아서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레즈비언을 '여자가 좋아서 남자가 되고 싶은 남자'라고 정의했다. 훗날 성 지향성과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된 뒤 성교육 강사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는 더 했다. 이번 강사는 "여자들은 함부로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를 벌려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창 '성'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날뛰는 나이인지라 남녀 불문하고 처음에는 열렬한 반응을 보였던 반 친구들도 저런 식의 이야기만 자꾸 반복되자 관심을 잃고 안 듣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어느덧 20대 성인이 되어 그동안 받아온 성교육을 돌아보면 그저 어이가 없다. 꽤나 이것저것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도 성인이 되고 나니 모르고 헷갈리는 것이 가득했다. 당장 한 달에 일주일씩은 고통받는 생리에 대해서도 생리대 말고 탐폰이나 생리컵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약물 등을 통해 주기를 늦추거나 중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서 습득해야만 했다. 여성의 대부분이 질염에 취약하며 감기처럼 만성적으로 재발할 수 있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스스로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 건강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난데 대체 왜 이런 걸 아무도 안 알려줬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다.

이번에 읽은 <움츠러들지 않고 용기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은 구체적인 성교육 내용이 자세하게 담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아주 어린 아이 부모부터 대상 독자로 삼고 있어서 성교육 할 때 필요한 자세를 알려주는 개론서에 가깝다. 사실 처음 책을 봤을 때는 왜 굳이 '딸' 성교육 하는 법을 따로 강조하는 것인지 의문이 좀 들었다. 그런데 머리말에서 저자가 "딸이든 아들이든 성교육의 기본적인 원칙은 동일"하지만, "우리 사회가 딸과 아들을 다른 식으로 대하다 보니, 성교육은 역으로 달라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성장 단계에 따라 같은 모습을 보여도 아이의 성별이 무엇인지에 따라 부모님의 반응이 다른 경우가 많다. 아들이 음란물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지지만, 딸의 음란물 시청은 금기시, 더 나아가 거의 죄악시되는 것이 그 예이다.

이 책은 성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아이가 주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돕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왜 아무도 이걸 안 알려줬을까' 했던 정보들을 스스로 하나씩 알아가며 답답한 적이 많았다. 실제로 분명 내가 받아온 성교육은 아주 기본적인 정보 전달도 온전히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교사, 혹은 부모가 박학한 성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꼭 필요한 정보를 가르치면서도, 스스로도 다양한 정보를 잘 걸러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춰주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개인의 주체성이다.

내 세대의 성교육을 뒤돌아보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은 아쉽기만 했던 성교육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부모 세대로부터 성교육을 받고 자라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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