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언수의 <잽>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캐비닛>과 <설계자들> 등 그의 장편만 읽은 나로서는 이 단편집이 '되게 낯설'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었는데, 웬걸! 김언수라는 작가 보통 아니다. 내공 충만한, 타고난 이야기꾼.

특히 표제작인 <잽>이 인상적이었다. 늘 세상을 향해 화가 나 있는 고등학생에게 권투는 세상과 겨룰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을 알려준다.

 

'링이건 세상이건 안전한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사람들은 독기나 오기를 품으라고 말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뜨거운 것들은 결코 힘이 되지 않아. 그렇게 뜨거운 것들을 들고 싸우면 다치는 건 너밖에 없어. 정작 투지는 아주 차갑고 조용한 거지.'

 

이 나이가 되어도 툭하면 뜨거워지는 내게 참 고마운 충고이다.

차갑고 조용하게!

냉장고에서 방울토마토 가져오는 것처럼 툭, 툭, 잽, 잽!

이 사실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좀 편했을까?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못 되면요?"

"홀딩이라는 좋은 기술도 있지. 좋든 싫든 무작정 상대를 끌어안는 거야. 끝어안으면 아무리 미워도 못 때리니까. 너도 못 때리고 그놈도 못 때리고 아무도 못 때리지."'

 

차가워질 수 없다면, 그래서 잽을 날릴 수 없다는 끌어안아야 한다! 참 명료한 세상살이 방법이다. 잽과 홀딩 사이! 그 '사이'에 세상 사는 비법이 있다.  

 

ps. <금고에 갇히다>와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에도 노란 포스트잇 몇 개가 붙여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김영하다운 소설. 가독성 있는 단문에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 반갑다. 이 책은 출간 전에 예약 주문을 했고, 어제 받자마자 한 시간만에 후딱 읽었다. 읽고 나니 허탈하다. 오래 기다리던 연인을 플랫폼에서만 잠깐 본 것 같은 아쉬움. 다음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같이 잠시 공허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살인’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늙음’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늙으면 옛일을 추억하며 산다는데, 그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룻밤에도 몇 번씩 레테를 오가며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허방을 짚는 인물의 일상은 고독하고 무상하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책읽는 시간)을 자주 듣는 나로서는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음성이 자동지원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는 무심한, 차가운 단문들. 한때 연쇄살인범이었던 노인의 오락가락하는 기억과 그 기억을 붙들기 위해 악착같이 메모하고 녹음하는 그의 행동이 손에 잡힐 듯 명료하다.

이번 소설의 제목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그리고 결말은 <호출>을 연상케 한다. 소설은 과거 연쇄살인범이 현재 연쇄살인범이라 확신하는 사내를 쫓는 형식이다. 때문에 독자 역시 노인을 따라 손에 땀을 쥐며 사내를 추적하지만 결말은 허망하다. 멀리서 찾아갔지만 예정시간보다 일찍 마감한 맛집의 닫힌 문 앞에 서있는 느낌.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니체, 몽테뉴, 프랜시스 톰프슨 등의 어록들 또한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생경하게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포, 차 떼고 중편 정도로 다듬었으면 더 좋았을 걸…….

뭔가 5% 부족한 듯한 이 독후감을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래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