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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믿고 보는 작가가 몇 명 있다. 박민규, 한창훈 그리고 천명관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제목이 특이했다. '칠면조'와 '육체노동자'가 뭐 어쨌단 말이지?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제목이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읽고 첫번째로 느낀 점은 천명관은 역시 장편작가라는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단편보다는 호흡이 긴 장편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천명관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쓴 8편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오십대의 이혼남(혹은 별거)이다. 이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떠돌다 동사(凍死)하거나(<봄, 사자의 서), 살인을 저지르고(<칠면조와 육체노동자>) 시체유기에 동참하거나(<핑크>) 방화(전원교향곡>)하는 등 세상과 불화한다.
"사내는 취한 눈으로 술집 안을 둘러본다. 업무가 끝난 뒤에 늘 일과처럼 찾던 장소지만 그의 눈엔 모든 게 낯설다. 카운터에서 돈을 받는 여주인의 얼굴도 낯설고 동료들의 얼굴도 낯설다. 회사를 십년 넘게 다니는 동안 언제가 아슬아슬한 기분이었고 언제가 꿈꿨지만 한번도 대열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만 그걸 누구에게물어봐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말없이 소주잔을 든다."(<봄, 사자의 서> 23쪽)
1970,80년대를 경제성장의 주역이던 가장들은 하나둘 현역에서 물러나 뒷방 영감으로 전락했다. 목숨 걸고 가정과 사회를 위해 헌신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무너지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과 가족의 무관심뿐이다. 살아온 이유도 살아갈 목표도 찾지 못한 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이 세상과 결별하는 것뿐이다.
전편을 읽는 동안 내내 우울했다. 장마 속 어두운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 그래도 맨 마지막에 <우이동의 봄>을 만난 게 다행이랄까. 이 소설은 폐암을 선고받아 시한부를 이미 넘긴 할아버지와 막 제대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손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길가에 핀 벚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꽃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가난한 우리가 누리는 가장 저렴한 호사였지만 한창 만개한 벚꽃은 너무 화려해 나에겐 꿈속인 듯 도무지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우리에게 현실은 옹색한 단칸 셋방이었고, 밤마다 들리는 기침소리였으며 주책없는 중년 부부가 밤마다 살찐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내는 난잡한 교성이었고, 치정과 불륜, 어깨를아프게 찍어누르는 철근이었다."(<우이동의 봄> 215쪽)
전체적인 상황은 하나도 다를 게 없지만 그들 조손은 서로에게 하나씩 진실을 털어놓으며 화해한다. 밀려나고 쫓겨나 중심을 잃은 사람들, 꿈조차 꿀 수 없는 절박한 현실이 작품 속에 가득하다. 8편의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소리없는 아우성"
지긋지긋한 일상이 쌓여 추억이 되듯, 방황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사는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 내 생이 될 것이다. 오십! 무겁고 두려운 나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