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놀라운 사건들이 가득할 거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고, 자신에게 인생을 하나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처음엔 곧 녹을 수 있을 듯 얇은 막으로. 하지만 이내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층을 이루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가까스로 생긴 친구들 눈에 지나치게 심각하고 유머 감각이 없는 전형적인 아시아 여자애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할머니가 막 생리를 시작한 나에게 생리대를 사주기 위해 슈퍼에 갔지만 탐폰들만 잔뜩 늘어선 진열장 앞에서 그것들이 무엇인지 몰라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긴긴 하루를 견디다 지루해지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일부러 일본 식품점에가지만 일본인 주인과 유창하게 의사소통할 때마다 자긍심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는 사실 역시 미처 알지 못했다.

할머니처럼 검버섯이 피어 있지만 한국 남자의 것과 달리 은빛 털로 뒤덮여 있는 그의 팔을 바라보는데, 브뤼니에 씨를 할머니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그 역시 할머니에 대해서 끝내 알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실감났고 그러자 놀랍게도 가슴 안쪽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