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 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 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나이, 백정이라는 표식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의사가 그러는 거예요. 이런 사고를 당하고 이 정도 다친 건 흔한 일이 아니라면서 저보고 운이 좋다고요. 부정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잡고 싶을 만큼 아까운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 건 이미 다 끝나버렸다. 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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