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방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3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왔다.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그곳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애인, 정말 애인 같은 장소였다. 그 작은 방은 저녁에 돌아오면 그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고, 포근하게 감싸 주었으며, 그가 필요로 할 때는 영혼과 실체로서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주었고,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곳은 그의 일생에 오직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단 한순간이라도 그곳을 버리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생토록 착실했고, 단정했고, 욕심도 안 냈고, 거의 금욕주의자에 가까웠고, 깨끗했고, 언제나 시간을 잘 지켰고, 복종했고, 신뢰를 쌓았고, 예의도 잘 지키며 살아왔건만...... 그리고 단 한 푼이라도 스스로 일해서 벌었고, 전기세나 임대료나 관리인에게 주는 성탄절 보너스도 언제나 제때 꼬박꼬박 현금으로 지불했으며, 빚이라고는 진 적이 없고, 남에게 폐를 끼친 일도 없고, 병에 걸렸던 적도 없고, 사회 보장기관에 신세를 진 적도 없고……. 언제 그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일생 동안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말고는 절대로, 결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건만.…. 쉰셋 되는 해에 어쩌다 큰 위기를 겪게 되어, 주도면밀하게 세워 두었던 인생의 계획을 몽땅 수포로 돌려 버리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으며,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으로 기껏 건포도가 든 달팽이 모양의 빵 따위나 뜯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두려움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부서지는 데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가 궁금해졌다.
그 모든 것의 잠재성은 만약에 <할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해보고 싶다〉라는 가정에 묶여 있을뿐이고, 조나단은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잡다하고 끔찍한 생각들을 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절대로 할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럴 인간이 못 되었다. 정신적인 곤궁함과 혼란스러움과 혹은 순간적 증오로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정신 착란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으로 실행하거나 혹은 말로도 생각을 <내뱉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 내는 사람이었다.
보행은 마음을 달래 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걷는 것은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 놓고, 그와 동시에 리듬에 맞춰 팔을 휘젓고, 숨이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중심을 잡는 데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감각을 느끼고 - 그런 모든 것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로워지는 일련의 현상이었다.
우러지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맛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조나단은 식사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맛있게 음식을 먹어 보았던 적이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통조림에 정어리가 네 개들어 있었으므로 그런 맛을 여덟 번 맛볼 수 있었다. 빵과 함께 온 신경을 집중하며 씹어 먹었고, 포도주도 여덟 번 마셨다. 그는 아주 천천히 먹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배가 많이 고플 때 음식을 빨리 먹으면 몸에 좋지 않고 소화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속이 메스껍거나 구토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먹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식사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어리를 다 먹고, 깡통에 남아 있던 기름도 빵으로 훑어서 다 먹은 다음 치즈와 배를 먹었다. 배는 어찌나 수분이 많은지 껍질을 깎다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그리고 치즈는빈틈없이 단단히 뭉쳐져 있어서 칼날에 자꾸만 달라붙었고, 맛이 어찌나 시면서 쓰던지 잇몸이 순간적으로 아찔했으며, 잠깐 동안 침샘이 말라 버려 입이 건조해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달콤하고 물이 많은 배를 한 조각 먹으면 다시 괜찮아지면서 이와 입천장에서 떨어져 서로 엉키다가 혀를 타고쪽 속으로 쏙 들어가곤 하였다. 다시 치즈 한 입 먹고, 한 번 살짝 놀라고, 또다시 그것을 부드럽게 섞어 주는 배를한 조각 괴고, 치즈 먹고, 또 배를 먹고…….. 맛이 너무나 좋
아서 그는 치즈를 쌌던 종이를 칼로 박박 긁었고, 조금 전에칼로 썰어 냈던 배의 가운데 부분도 갉아 먹었다. 한동안 몽롱하게 앉아 혓바닥으로 이를 훑다가 마지막 남은 빵 조각과 포도주를 삼켰다. 그런 다음 빈 깡통과 배 껍질과 치즈를 쌌던 종이를 빵 부스러기와 함께 돌돌 말아서 봉지에 넣어 치웠고, 쓰레기봉투와 빈 병을 문가에 세워 둔다. 음, 가방을 의자에서 내려놓고, 의자를 도로 제자리에 갖다. 놓은 후, 손을 닦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담요를 발치까지 밀어 놓고, 홑이불만 덮었다. 그리고 불을 껐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위쪽 천장 근처에 있는 구멍에서조차 한 줄기 가느다란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물기 찬 미풍과 멀리 아주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몹시후텁지근했다. 「내일 자살해야지.」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말이야!)
각 층마다 사선으로 비치는 햇살이보였다. 아침 햇살은 그사이 푸른색을 잃고 노란색으로 변하여 더 따스해진 것 같았다. 아래층 세대들이 있는 곳에서 일찍 깬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찻잔 부딪치는 소리, 냉장고 문이 닫히는 둔한 소리, 낮게 틀어 놓은 라디오 음악 소리. 그리고 그에게 아주 친숙한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찔러 왔다. 라살 부인의 커피 향기였다. 숨을 몇 번 깊게 들이마시자마치 직접 커피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가방을들고 길을 재촉했다. 갑자기 공포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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