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매달려 있는 카페였다. 그는 그곳을 몽카페(Mon cafe, 나의 카페)라 불렀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만의 카페, 자신만의 집, 자신만의 술집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을 잘 모르니 그가 하는 말이 곧 프랑스의 진실이 된다. 아, 프랑스인들은 그렇구나, 나의 카페, 나의 빵집, 나의 술집이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그런 것을 만들어 볼까?
나의 카페가 되는 기준을 물었다. 자주 가면내 것이 되는 것이냐고, 그는 자주 가는 곳. 나와 공간이 서로 자연스러운 곳이라고 대답했다. 자연스러운 곳, 내게 그런 곳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곳은 없다. 심지어 집도 아니다. 내게 집은 그냥 집일 뿐, 내 집이란 말은 어쩐지 어색하다. 처음으로 내 것을 만들고싶어졌다. 자신있게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싶어졌다.
파티시에인 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달콤한 맛은 적당함을 잃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적당히 단맛은 없으며, 혀끝에서 달콤함을 느끼는 순간, 이미 하루 권장량을 한참 초과한 당분이 들어간 것이라고. 인생에서 ‘적당함‘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아마 ‘달콤함‘을 잃었을 것이다.
날씨 이야기만 건네는 카페 주인을 알고 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 햇빛을 즐겨요."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내게 건넨 말인지, 태양을 향해 던진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인사에 내 안에 고였던 말들이 조용히 물결쳤다. 그러나 나는 넘실거리는 말들을 그에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저 노트에만 담았을 뿐이다. 애초에 타인을 향한 말이 아닌 내게 하는 말이니 굳이 건넬 이유가 없었다.
날씨가 좋다. 햇빛을 즐긴다. 함부로 외롭지 않겠다.
오래전 노트에 적었던 말이다. 펼치는 순간, 그 시절의 날씨와 햇빛과 호의가 함께 건너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다. 더는 함부로 외롭지 않겠다.
파리의 카페를 담은 글을 쓰며, 그 풍경들을 기록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내가 쓴 글 속에 행위라고 할 만한 것은 ‘봤다‘와 ‘마셨다‘ ‘먹었다‘ ‘생각했다‘가 전부인데, 그런 단순한 글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호숫가에서 (나는 지금 호숫가에 살고있다) 새를 관찰하는 사람을 만나 그 두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새를 관찰하고, 새를 그리고, 새를 기록하는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용도를 물었다. 어떤 기관의 연구 자료로 쓴다거나 관찰 일기 같은 블로그를 운영한다거나 책을 준비 중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는 내 질문에 그저 배시시 웃으며 특별한 용도는 없다고 했다. 새를 기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시선을기록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냥 새를 보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던 그의 말이 내 안에 무엇인가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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