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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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이어 큰 인기를 끌었고, 비슷한 시기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려낸 영화 [국제시장] 역시 천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인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앞다투어 1990년대 아이돌 가수들을 다시 등장시키며, 지금은 30대 이상이 된 당시 청소년 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로 심리학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은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성을 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 전 누군가와 크게 싸웠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 그냥 넘겼더라면'이라는 후회를 한다. 그래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생각해도 안좋은 기억, 나쁜 사람이라면 그 기억과 사람은 당사자에겐 정말 나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여러 이유로 무시당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재평가되는 것도 일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란 어느 시절에나 존재했던 것이다. 무엇을 이룬 사람에게 과거란 오늘을 이루게 한 자양분이다. 그래서 그에겐 지나간 시절은, 그 어려움과 가난은 오늘을 만들어낸 씨앗이 된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가난했던 옛시절의 음식을 찾아 먹고, 티브이에 나오는 판자촌의 모습에서 향수를 느끼는 것도 이러한 심리에서 기인한다.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지나간 시간이란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아름다웠던 시절이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지점이다. 그래서 그들 또한 흘러가버린 시간과 공간을 상기시키는 곳에서 추억에 잠기고,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추억이 단지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에서 끝날 때, '향수'라는 이름의 이러한 되돌아봄은 "나도 왕년에~"로 대표되는 '추억팔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 되돌아봄이 단순한 추억팔이를 넘어서려면, 그 안에서 정말 좋았던 것, 그리고 더 좋을 수 있었던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책 제목에서처럼 '지나간 미래' 속의 지나간 시간(과거)이 의미있는 까닭은 그것이 되돌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되돌림이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역사전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지향성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역사를 통해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식의 상투적인 표현에 기대지 않더라도,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태도는 가치있고 아름답다. 이러한 사고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회가 인간에게 부과하고 있는 수많은 제약들이 실제로 인간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패배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또한 그리 건강한 것은 아니다. 

지난 며칠간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도정일의 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를 띄엄띄엄 읽었다. 두 책 모두 이전에 완독한 적이 있었는데, 두번째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도정일의 책은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는데, 최근 22년만에 개정판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다시 구입해 읽어보았다 (막상 보니 개정판이라는 광고는 좀 과장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판된 책이 다시 출간된 것만은 분명 반가워해야할 일이다). 두 책 모두 인문학자 (불문학자와 영문학자)가 쓴 책으로는 꽤 큰 반향을 일으키며 판매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도정일의 책은 물론 다른 평론가들의 책에 비해서는 훨씬 더 '에세이'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책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성공이 더 놀랍다고 하겠다. 
 
황현산의 책은 과거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차있다. 그 기억은 저자 자신만이 갖고 있는 유년의 추억과 그 시절을 살아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을 경험들을 망라한다. 물론 이 둘의 경계가 그렇게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추억 속에서 시대를 읽어내고, 그 시대를 견뎌온 다른 사람들의 삶을 쓰다듬는다. 그가 추억하는 과거는 하나의 이미지로 축약되지않는다. 그것을 막연히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는 유신시절의 폭압이 있고, 가난했던 시절의 비극이 있으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군대의 시간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시절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따듯하다. 그의 자세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남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곤 하는 냉소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는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자리에서 성공한 사람이기에 과거 또한 아름답게 윤색해버렸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글 속 과거는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와는 정 반대에 있다. 그런 과거를 껴안을 수 있는 그의 힘은 그 시간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 아니 우리가 지금 몸담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맞닿아있다는 평범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오늘을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똑같은 마음으로, 그는 과거를 탐색한다. 우리가 한번 걸어왔던 길, 하지만 후회가 깔린 길. 그 후회를 끄집어내어 그는 오늘을 산다. 잘만 된다면, 내일다시 바라봤을 때 오늘의 후회는 그제의 후회보다는 조금 덜할지도 모른다. 이런 그의 시선의 따듯함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자신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구본창과 강운구의 사진을 읽어내는 그의 시선은, 어느 순간 누가 언제 이 사진을 찍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만든다. 
황현산의 산문들을 읽으면서 오정희의 소설들을 떠올렸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옛우물'이 내게 가져다준 파장은 꽤 컸다. 열네살 소년이 사십대 중반의 주부의 심리를 그려낸 소설을 읽고 공감했다고 하면 그 조로증을 염려할 만하다고도 하겠지만, 그녀가 그려냈던 그 주부의 모습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었고, 우리 누나가 마주할 모습이었으며, 또 언젠간 내가 겪을 일들이었다. 아니다. 이미 그 시절, 그 삶의 권태를 나는 다른 방식으로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글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공감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마치 살아봤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그런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도정일의 접근은 좀 더 적극적이다. 물론 책에 실린 그의 글이 좀 더 길고, 분석적인 평론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이야기한 평론의, 평론가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에게 있어 문학이란 실천적인 것이며, 그 생존을 위해서라도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표제작인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산성비가 내려 비를 맞지 않는 것이 과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자연의, 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를 가르치고 읽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그의 글 속에서 문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파괴적인 문명에 대한 반성이라는 맥락에서 읽힌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파괴 속에서 사라져버린 과거를 예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단서 또한 파괴의 과정 속에 들어있음을 읽어내고 방법을 제시한다. 도정일의 글들은 딱딱하고 이론적인 부분들은 최소화하고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문학을 연결시켜 읽어낸다. 그런 그의 글은 힘이있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멋과 힘을 그의 글은 지니고 있다. 

황현산과 도정일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한편으론 과거에 대한 잊음이, 망각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더욱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이 단지 책을 읽을 때만 지속된다면 오히려 이 책이 하는 역할은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모순적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진단은 너무 비관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황현산과 도정일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그 안에 들어있는 시선의 따듯함 그리고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사는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음을 읽어낼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과거가 될 현재를 희생하며 미래를 지향하고 다시 현재는 과거가 되어 추억될 때만의미를 지니게 되는 이런 제의(리츄얼)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어찌보면 한국의 폭압적인 근대화가 만들어낸 이러한 양식이 개개인의 삶 속에 스며들어간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과제는 개개인들이 지닌 숙제로 남아있다. 거대한 변화 속에 휩쓸려가며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가야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책들이 범람하고 있는 이때 (사실상 이런 책들은 사람들에게 미래전망을 주기보다는 '겁내고 긴장해야해'라고 말하는 협박과도 같다), 황현산과 도정일의 책이 주는 의미는 더욱 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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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론 - 구조, 연대, 창조
앤서니 엘리엇 & 브라이언 터너 지음, 김정환 옮김 / 이학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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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만한 번역자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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