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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평점 :
남녀를 불문하고 그를 한번 보게 되면 누구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 어린 아이같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그는 존재 자체로서 예술이 된다. 아마 화가 바질도 그런 그의 모습에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도리언의 초상을 그리면서는 오직 자신만의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바란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그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것인지 헨리와의 만남을 가지던 중 그에게 도리언을 소개하게 된다. 이때부터 도리언 그레이의 불행은 시작되고 만다.
세상 모든 것을 순수하게만 바라보던 도리언은 헨리로 인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의 영향으로 인해 그토록 아름다운 자신의 얼굴도 어느새 늙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시빌 베인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말 것이라는 것도... 또한 비극적인 그녀의 죽음이 있고 난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에게 헨리는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길 한다. 그녀는 연극배우였으니 죽음또한 한낱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현실세계에는 없었던 일로 그야말로 허구일 뿐이라고 말이다. 도리언의 영혼은 헨리가 말하는 대로 조종되어지고 그럴수록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자신의 초상화는 점점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만다. 그는 무엇보다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은 언제나 완벽함 그 자체여야만 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잔인한 미소를 지닌 흉측한 얼굴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아무도 그런 추악한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그림을 꽁꽁 숨기기로 결심하는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작 중 하나이다.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별 어려움없이 책장이 휙휙 넘어가는 재미를 느꼈다. 도리언 그레이가 변해가는 모습에 스릴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애잔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변해가는 외모에 슬픔을 느낄 때가 있다. 나 역시도 도리언 그레이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내 초상이 있어서 현재의 나와 그림 속의 모습이 바뀐다면... 오랫동안 젊은 시절의 모습을 계속 간직할 수 있다면 아마도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일의 댓가는 반드시 치뤄져야 했다. 바로 자신의 순수한 영혼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도리언은 헨리로 인해 쾌락에 눈을 뜨게 된다. 또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기 위해 영혼따윈 내던져버린다. 아름다운 초상을 그려줬던 화가 바질도 자신의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죄책감으로 견딜 수 없어한다. 결국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마지막 도리언의 모습에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이 장면이 이 책의 주제를 강하게 나타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추리소설도 아니건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것이 고전작품인가 할 정도의 현대적인 세련미까지 갖추고 있었다. 발간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금서로도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이 작품을 볼 수 없었다면 문학계와 독자들에게 크나큰 손실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선 잘 몰랐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정말 대단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면은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명작이 왜 명작인지 느끼게 해 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번 한번뿐만이 아니라 책장에 꽂아두고 몇번이고 다시 봐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