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예전엔 단편소설이 주는 매력을 잘 못 느꼈었다. 뭔가 중간에 이야기가 툭툭 끊기는 것 같아서 읽기를 꺼려했었다. 그래서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지 단편소설만의 묘미가 이런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듯한 이야기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잠깐 읽을 수 있다는 실용성 또한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단편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황순원 문학상의 수상작품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쟁쟁한 작가들의 수준높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책장을 열기도전에 기대감은 높아만 졌다. 대상작품은 박민규작가의 '근처' 라는 이야기였다. 박민규 하면 기발하고 재밌는 이야기들만 떠오르는데 과연 이번엔 어떨까.

 40대 독신남 호연은 병에 걸려 귀향을 하게 된다. 어린시절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그 시절 묻었던 타임캡슐을 꺼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든 물건 하나하나를 꺼내보며 추억에 잠겨든다. 또한 동창인 순임의 따뜻함에 잠시나마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진심이 아니란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인생의 모든 것을 체념한 그는 대뜸 돈을 빌려달라는 그녀의 말에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머리는 세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나는 내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전혀 박민규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라는 것에 새로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대상 작품 외의 작품들 중 특히 좋았던 걸 꼽아보라면 김애란 작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였다. 대체로 문학상 작품들은 심오하거나 무겁거나 진중하거나 한데 그 틀을 완전히 깨버린 것 같았다. 주인공 미영이 병만이라는 선배를 짝사랑하는 내용인데 전체적으로 재밌고 아기자기한 느낌이었으나 끝은 씁쓸했다. 자신은 사랑으로 다가갔으나 그에겐 그저 뚱뚱하고 먹성좋은 착한 후배로만 보였으니 참 안타까워 보였다.

 그 외 여덟작품들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남편들의 갑작스런 실종에 당황해하면서도 일상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이야기인 강영숙의 그린란드,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던 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한없이 우울한 분위기를 띄었던 김사과의 정오의 산책, 신체적 아픔보다 정신적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김숨의 간과 쓸개, 박민규 못지 않게 기발하고 재밌는 작가 김중혁의 C1+y=:[8]:을 읽고는 그의 상상력에 다시금 놀라웠다. 또 배수아의 글을 읽는 건 처음이었는데 조금 난해한 느낌이었다. 또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역시 그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전성태의 이미테이션은 진짜와 가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케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황순원 문학상이란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문학상 하면 이상문학상밖에 몰랐었는데 황순원 작가의 문학상도 있었다니...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데 이젠 볼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조금 난해한 작품들도 있어 이해하기 어렵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쟁쟁한 작가들의 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매력을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 개인적인 의견을 내보자면, 젊은 작가들의 글들도 많이 실렸으면 한다. 너무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만 내세우기보다는 밝고 산뜻한 분위기도 적절히 배치해 보는게 어떨까 하는 바램이다.